답사(188)
-
신채호선생 사당및 묘소
소재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신채호선생님을 모신 사당] 20세에 성균관박사가 되었으며, 황성신문의 기자로 논설을 쓰며 을사조약 체결을 단호히 배격하였고, 대한매일신보에 초빙되어 주필로서 국권회복, 민족의식 고취에 공헌하였다. 28세 무렵에 이동녕·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하였으며, 1910년 해외에 망명한 후 본격적으로 국사 연구에 힘써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등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안내판 글 내용] [사당앞에 있는 간단한 선생님의 약력을 적은 비문] 1919년 상해임시정부수립 후에는 의정원 전원위원장으로 독립운동에 힘을 기울였고, 1929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旅順(여순)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순국하였다. 뒤늦게 정부에서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
2015.10.23 -
丹溪(단계) 河緯地 (하위지) 묘역
소재지 : 선산읍 완전리 고방실 마을 [丹溪(단계) 쉼터] 河緯地(하위지, 1387~1456) 본관 晉州(진주). 자 天章(천장), 仲章(중장). 호 丹溪(단계), 延風(연풍). 시호 忠烈(충렬). 벼슬은 부제학,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세종 17년(1435) 생원을 거쳐 1438년 式年文科(식년문과)에 장원, 賜暇讀書(사가독서)를 하고, 1444년 집현전 校理(교리)가 되어 '五禮儀註(오례의주)' 詳定(상정)에 참여하였다가 1446년 同福縣監(동복현감)으로있던 형 綱地(강지)의 貪?罪(탐람죄)에 인책 사임하고, 문종1년(1451) 집현전 直殿(직전)에 등용되어 首陽大君(수양대군)을 보좌하여 앞서 新定(신정)한 '陣說(진설)'의 교정과 '歷代兵要(역대병요)'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단계 쉼터 옆 묘역가는 ..
2015.10.21 -
경종대왕태실
소재지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호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호 [태실로 올라가는 입구] 억정사대지국사비에서 북쪽으로 약 1km 떨어진 작은 봉우리에 태실이 자리하고 있다. 임금의 아들은 보통 사람과는 달리 胎(태)를 좋은 곳에 안장하는데 이러한 시설물을 태실이라 한다. [안내판과 뒤쪽 둔덕위 태실 전경] 태봉마을의 서쪽으로 볼록하게 솟은 산봉우리가 있는데, 이 산을 속칭 胎峰(태봉)이라 부르고 있으며 後三峰(후삼봉)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끝에 위치한다. [안내판 글 내용] [태실로 가는 나무계단] 경종대왕 태실비에 의하면 경종이 숙종 18년(1688) 10월에 태어나자 이듬해 2월에 태장하였으며, 영조 2년(1762) 9월 加封(가봉)하였다. 영조는 선왕 경종의 태실을 꾸미고, 巡護軍(순호군) 1..
2015.10.20 -
시조시인 李鎬雨(이호우) 李永道(이영도) 오누이 생가를 찾아
소재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259-24 등록문화재 제293호 비 개인 햇볕이 쨍쨍 한 날. 우린 청도에서 밀양으로 넘어가는 도중에 있다는 시조시인 이호우님과 이영도 남매의 생가와 詩碑(시비)공원을 찾아 집을 나섰다. 올림픽대로를 그쳐 새로 생긴 길을 넘으니 곧장 경산병원이 보이고 우회전으로 꺾어 남성현재를 구비돌아 올라 정상에 있는 휴계소에 주차 했다. 예전에 보았던 이호우님의 '살구꽃 피는 마을'의 詩碑는 없어지고, 그 자리엔 싸움하는 소 두마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휴계실 밑 식당에서 시원한 콩국수로 점심을 대신하며, 주인에게 여쭈어보았지만.... 모른단다. 수첩에 적어온 대로 찾아갈 수 밖에 없다. 다시 출발하여 용암온천도 지나 사거리...어디로 가야할까? 잠시 길가에 차를 정차시켜놓고..
2015.10.19 -
李鎬雨(이호우) 李永道(이영도) 오누이 詩碑(시비)공원
소재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 [이호우, 이영도 두 남매의 詩碑] 爾豪愚(이호우) 경상북도 淸道(청도) 출생. 1924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8년 신경쇠약증세로 낙향하였고, 29년에 일본 도쿄예술대학(東京藝術大學}에 유학하였으나 신경쇠약증세의 재발과 위장병으로 귀국하였다. 시작활동은 39년 동아일보 '투고란'에 '낙엽'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고, 李秉岐(이병기)의 추천으로 '달밤'이 실리면서 본격화되었다. 광복 후 대구일보 편집과 경영에도 참여하였으며, 55년 첫시조집 '이호우시조집'을 간행하였다. 그 후의 작품들을 모아 68년 '休火山(휴화산)'을 발간하였다. '달밤'에서와 같이 범상한 제재를 선택하여 평이하게 쓴 것이 초기 작품의 특징이라면 '휴화산'에서는 인간 욕망의 승화와..
2015.10.19 -
丹齋(단재) 申采浩(신채호) 선생 기념관
소재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성면 귀래리 350 충청북도 기념물 제90호 [고드미 녹색마을 안내도와 안내글 내용] [기념관 앞쪽 단재선생 하늘북 시비] 단재 신채호 선생에게 국적이 없다? 믿기지 않고 놀라운 일이지만, 실제로 신채호 선생에게는 국적이 없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와관련해 "일제는 강점 직후인 1912년 '조선민사령'을 제정하여 조선인의 호적을 완전히 장악했는데 단재는 그 이전인 1910년 중국 청도를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출국 망명했기 때문에 호적상 무국적인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중국의 차디찬 여순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단재 신채호 선생은 국적도, 호적도 없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의 호적령에 따를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던 선생이 애통한..
2015.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