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일상(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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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퇴원합니다.
그동안 병상에서 힘들었지만, 맞아요. 무지개가 뜨는 과정을 지난거에요. 정말 당신 애 많이 쓰셨어요. 당신의 행복한 시절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함께 남은 삶을 행복으로 채웁시다. 5월 29일 내일 퇴원을 하라고 하셨다 한다. 아이들에게 전화로 아버지 퇴원소식을 전하였다. 퇴원을 한다해도 한동안은 블로그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래는 걸리지 않겠지요. 염려해주신 이웃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셔요.^^
2017.05.30 -
병원 일지
5월 8일 재활치료와 작업치료 심초음파 검사도 하고 X선 촬영도 하고 주사도 맞고 병원에서의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5월 9일 죽도 잘 드시고, 치료도 잘 하고 계셔서 참 좋다. 5월10일 운전면허 갱신에 필요한 증명사진을 찍고, 119를 불러주어 지금까지 치료를 잘 받게 도움을 주신 송도의원에 음료수 한박스를 사서 들고, 환자복을 드리고 원장선생님께 감사인사를 드렸다. 5월11일 병원가기전 일찍 집에서 출발 운전면허 갱신부터하고 병원으로.. 죽만 드셔서 그런지 허전한게 배가 고프다고 한다. 집으로와서 쇠고기를 갈아 뽁아 바나나도 드시기 좋게 썰어서 저녁에 다시 병원으로 가져다 드렸다. 5월12일 폐에 꽂은 호수 뺌 날아갈것 같다 하신다. 보는 나도 기분이 업 5월13일 월요일이나 화요일쯤 퇴원해도 되겠..
2017.05.20 -
중간보고 드립니다.
일반병원에서 119로 종합병원 응급실로, 그리고 응급 중환자실에서 하루밤을 지내고, 다시 호흡기질환 일반병실 5동으로 옮겼으나, 의식을 잃어 다시 뇌질환응급실로 옮겼다. 뇌질환응급실은 면회가 하루 30분으로 정해져있으니, 밖에서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집으로 와서 면회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집으로 2틀을 그곳에서 지내고 5병동 일반 신경과 병실로 옮김 그곳에서 3일을 지난 후 그쪽 치료는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면서 간호. 간병통합서비스 6병동으로 옮겼다. 토요일 막내도 서울로 올려보내야하는데, 다행히 보호자가 필요없는(있어도 됨) 병실로 옮기게되어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가야하는 아이들도 남아 있는 나도 여유를 가질수 있게 되었다. [간호. 간병통합서비스 병동] 이곳은 2016년 12월 26일 부터 전문 간..
2017.05.09 -
블로그를 할 수 없었던 이유
오랫동안 소식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남편이 심한 변비로 병원을 가게되어 쉽게 끝날 것 같았던 병원행이... 급하게 돌아가는 병세의 심상찮은 증세로 119의 도움까지 받아 응급실로 가게 되었다. 이것 저것 많은 사진을 찍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 뇌졸증까지 합세를..... 인지능력 혈관이 좁아져서 순간 막혔다고 한다. 응급 시술을 하였다. 주렁주렁 링거와 영양제 등등.. 그리고 입으로 음식을 삼킬수 없다며 콧줄까지... 현재는 콧줄도 빼고, 음식을 삼키는 2단계 연습 중이다. 잘못 하여 폐로 음식물이 들어가면 급성 폐렴을 일으켜 위험하다 하니 음식을 먹을때마다 기침을 할까봐서 마음은 조마조마.. [병원 승강기 내에 걸린 눈맞춤 / 박노해] 아직은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 보다는 조금 숨을 쉴 것 같다. 서울사..
2017.05.05 -
2.18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기억공간)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도시철도 중앙로역 대구지하철 참사는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탑승객이 휘발유로 전동차에 불을 지르면서 350여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다. [기억공간 옆 지하철 통로] [기억공간] 기억공간은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피해자를 기리고 사고의 재발방지를 위해 경각심을 주고자 조성된 곳으로 사고 이후 보존됐던 일부 공간을 고쳐 정식 개방된 곳이라 한다. [물품보관함] 국민성금 5억 2000만원을 들여 조성되었으며, 추모 공간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추모벽과 사건 당시 불에 그을린 벽과 화재의 열기에 수화기가 녹아내린 공중전화, 당시에 있었던 매점, 혈압측정기, 지하철 사물함, ATM기와 희생자의 유류품 등도 전시하고 있다. [공중전화 부스] [화재로 녹아내린 광고판] [중앙로역 ..
2017.02.02 -
1월 1일 내 생일
어제 1월 1일 내 생일.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아니다. 남편 생일과 아이들 생일은 챙겼지만, 음력 1월 1일 내 생일은 늘 뒷전이였다. 가끔 남편이 챙겨주기도 하였지만, 내 생일은 유야무아 음력설날에 묻혀 지나쳤다. 그러다가 아이들 셋 다 결혼시킨 후 딸아이가 음력설은 시댁에서 지내야하니 양력설은 친정집에서 내 생일 챙겨주고, 또 다녀갔으면 하고 말한다. 그러자 남편도 그러자고 하네요. 앞으로 어머니 생일은 음력이 아닌 양력 1월 1일이다 하고 못을 박았다. 음력설에 묻혀 지나치는게 싫었나보다. 하긴 날자는 같다. 1월 1일 [며느리 선물] 벌써 작년이 되었네요. 12월31일(섣달 그뭄날) 큰아들과 손자와 손녀가 왔다. (며느린 근무)하기에 함께하지 못하였지만, 케익과 며느리가 준비한 조끼와 금일봉을 ..
2017.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