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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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化(봉화) 鳳棲樓(봉서루)
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봉성리 387 문화재자료 제418호 [鳳棲樓(봉서루)와 안내판 전경] 鳳棲樓(봉서루)는 봉성면 소재지 중심부 시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관아의 문루였던 봉서루가 이곳에 있는 까닭은 옛 봉화의 읍치가 바로 현 봉성면 중심지였던 때문이라 한다. [房鄕(방향) 현판] 보통의 한자로 쓰여진 현판은 우측에서 좌측으로 읽게 되어있는데, 이곳의 현판은 房鄕(방향)이라 읽지 않고 鄕房(향방)이라 읽는다 한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房鄕(방향)?? 잠시 헷갈렸다. [鄕房(향방)과 안내판] 봉서루는 현재 봉성리 시장 내에 자리하고 있기에... 주변은 식당과 가계와 주차해둔 차들도 인해 사진을 담기가 힘들었다. 피해서 담느라 전체의 전경은 담지 못하였습니다. [안내판 글 내용] ..
2015.12.22 -
영주 槐軒古宅(괴헌고택)
소재재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877 중요민속자료 제 262호 [괴헌고택과 덕산고택을 알리는 안내팻말] 괴헌고택과 덕산 고택 두 고택을 답사하려 가는 길에 만난 반가운 안내팻말 나란히 적혀 있는 안내팻말처럼 德山古宅(덕산고택)은 중요민속자료 제262호로 지정된 槐軒古宅(괴헌고택)과 나란히 담하나를 경계로 붙어 있다. 우선 조금 더 아랫쪽으로 내려가 적당한 자리에 주차를 해 놓고, 대문이 활짝열려있는 괴헌고택부터 들려본 후 다시 밖으로 나와 덕산고택으로 향했다. [槐軒古宅(괴헌고택) 솟을대문 전경] 괴헌고택은 경북 영주시 이산면에 있는 살림집으로 정조 3년(1779)에 김경집이 지은 집으로 고종 8년(1871) 증손인 김복연이 일부 중수하였는데 지금도 건축 당시의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2015.12.21 -
영주 德山古宅(덕산고택)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878 문화재자료 제529호 [괴헌고택과 덕산고택 안내팻말] 어디쯤일까? 아직도 멀었을까? 궁금할 즈음에 나타나는 안내팻말 참 반갑다. 나란히 적혀 있는 안내팻말처럼 德山古宅(덕산고택)은 중요민속자료 제262호로 지정된 槐軒古宅(괴헌고택) 문화재 자료 529호 와 담하나를 경계로 붙어 있다. [괴헌고택 대문에서 바라 본 덕산고택 평문 전경] 通政大夫(통정대부) 僉知中樞府事(첨지중추부사)를 지낸 德山(덕산) 金慶集(김경집)이 영조32년(1756)에 두암에서 두월로 이주시 신축하면서 지은 집으로 처음의 당호는 德山亭(덕산정)이었다 한다. 공의 후손인 禧淵(희연)이 光武(광무) 8년(1904)에 일부분 중수하였다. [안내판 글 내용] [괴산고택 담너머로 담은 덕산고택]..
2015.12.21 -
경주 普門精舍(보문정사)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동리 29 [보문정사 전경] 普門精舍(보문정사) 重建記(중건기) 경주시 보문동에 定軒公(정헌공) 휘 鍾祥(종상, 1799~1870)이 1840년경에 건립하여 후진교육과 학문을 정진 하신곳이라한다. [景行門(경행문) 현판] [보문정사 삼문 景行門(경행문)] 보문정사의 삼문인 경행문이 닫혀 있기에 들어가 볼 수가 없어서... 담밖에서 담머너로 담을 수 밖에 없었다. 수시로 드나들수 있게 하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관리 때문인듯... [담밖에서 담은 普門精舍(보문정사) 현판] 선생은 영특하고 순수한 자질로 文元公(문원공) 晦齋先生(회재선생)의 아우 聾齋先生(농재선생) 가문에 태어났다. 어려서 조부 野隱公(야은공)에게 家學(가학)을 承繼(승계)하여 경전의 大義(대의)를 깨달..
2015.12.21 -
芬皇寺(분황사)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312 국보 제 30호 [분황사 안내팻말] [芬皇寺(분황사) 출입구] 芬皇寺(분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으로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로 편성되어 있다. [普光殿(보광전) 전경] 선덕여왕 3년인 634년에 세워진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불교가 크게 중흥했던 신라의 전성기와 함께 한 사찰이며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고승 원효와 자장이 거쳐 간 절이다. 원효는 이 절에 머물면서 '華嚴經疏(화엄경소)', '금광명경소' 등 수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은 神畵(신화)로 일컬어졌다. 원효 사망 후에 그의 아들 설총은 원효의 유해로 소상을 만들어 이 절에 모셔두고 죽을 때까지 공경하였다한다. 원효의 뼈를 부수어 만들었다는 이 소상은 고려 ..
2015.12.19 -
경주 司馬所(사마소)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89-1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호 [司馬所(사마소) 전경] [안내판 내용] [담밖 司馬所(사마소) 표석]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합격한 지방의 선비들에게 儒學(유학)을 가르치거나 정치를 토론하던 곳이다. 또한 자기수양을 위해 선비들이 찾던 곳으로, 연산군 때에는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주었다고 한다. 수양을 위해 선비들이 찾던 곳이기도하여 수양이 부족한 사람을 가리켜 '사마소에 입소하여야 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고도 한다. [司馬所(사마소) 전경] 사마소는 2개 동의 건물이 있다. 본체에 해당하는 風詠亭(풍영정)은 갓 사마시에 합격한 젊은 신진 사류가 주로 사용하였고, 그 서쪽의 炳燭軒(병촉헌)에는 원로 선비들이 애용하였다고 한다. 이들 노소의 선비들은 엄격한 자리 구별이..
201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