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槐軒古宅(괴헌고택)

2015. 12. 21. 06:12문화산책/고택과 문학관

소재재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877
중요민속자료 제 262호

 

 

 

[괴헌고택과 덕산고택을 알리는 안내팻말]

 

괴헌고택과 덕산 고택 두 고택을

답사하려 가는 길에 만난 반가운 안내팻말

 

나란히 적혀 있는 안내팻말처럼

德山古宅(덕산고택)은 중요민속자료 제262호로 지정된
槐軒古宅(괴헌고택)과 나란히 담하나를 경계로 붙어 있다.

 

우선 조금 더 아랫쪽으로 내려가 적당한 자리에 주차를 해 놓고,
대문이 활짝열려있는 괴헌고택부터 들려본 후
다시 밖으로 나와 덕산고택으로 향했다.

 

 

[槐軒古宅(괴헌고택) 솟을대문 전경]


괴헌고택은 경북 영주시 이산면에 있는 살림집으로
정조 3년(1779)에 김경집이 지은 집으로 고종 8년(1871) 증손인
김복연이 일부 중수하였는데 지금도 건축 당시의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안내판 글 내용]

 

[열린 삼문에서 바라 본 사랑채 ]


사랑채에 나란히 걸려 있는 현판 을 담아 올려봅니다.

 

 

[觀水軒(관수헌) 현판]

 

[月隱亭(월은정) 현판]

 

[魚躍海中天(어약해중천) 현판]


正寢(정침)의 앞쪽 왼쪽에 있던 月隱亭(월은정)과
오른쪽에 있던 행랑채는 1972년 수해시 유실되었다 한다.


위에 올린 月隱亭(월은정) 현판글씨만 사랑채에 나란히 걸려있었다.
언젠가는 복구되어지기를 기대하는 맘으로....

 

 

[인증샷?]

 

현판사진을 담고 돌아서는 제 모습이 남편의 디카에 잡혔다.

 

 

[사랑채]


마당이 넓은 사랑채.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 영역은 참으로 넓다.
대문칸을 들어서면 잘 관리된 잔디마당이 있고 높은 기단 위에 자리한
팔작지붕의 사랑채가 눈에 들어온다.

 

 

[槐軒古宅(괴헌고택) 현판]

 

[고택 안채 출입문]


사랑채의 뒤편은 안채의 마당이다.
남녀가 유별하다는 유교적 질서를 위해 내외벽을 설치해서
사랑방에서 안마당으로 문을 열어도 안채가 보이지 않게 해 놓았다.


槐軒(괴헌)이란 당호는 김경집의 아들 김영이
예안현(지금의 안동시 예안면)에서 槐(괴)나무(회화나무)가 좋은 곳에
월은정사를 경영하며 스스로 괴헌이란 호를 가진 데서 유래한다.

 

 

[고택 앞 마당 전경]


고택은 외풍을 막아주고 낙엽이 쌓여
재물이 모인다는 소쿠리형의 명당터에 자리해 있다.


남서방향으로 나지막한 세 개의 봉우리를 가진 삼태봉이 고택의 안산이다.
고택과 삼태봉 사이로는 금빛 모래가 좋은 내성천이 굽이쳐 흐른다.

 

 

[문간채와 행랑채]


집은 전체적으로 'ㄷ'자형의 안채와 뒤집어진 'ㄴ'자형
사랑채가 이어진 형태로서 경상북도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ㅁ'자 형의 폐쇄구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이 집의 특징이다.

 

 

[고택 뜰과 담]


특히 안채에서 중문이나 대문을 거치지 않고
외부와 통하는 구조가 두 군데나 있는데 이는 보기 힘든 형식이다.


하나는 안채의 뒷편 왼쪽담에 있는 샛문이고
다른 하나는 사당 옆에 담장에 있는 협문이다.


반가의 여성들이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의 감시와 통제를
받지 않고 외부 출입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나타난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가 되며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활동이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탑]

 

[탑 앞 석물]

 

저것이 무얼까?

궁금하였지만,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디카에 담고 돌아섰다.

정리를 하며 자세히 보니... 아하 바로 그것이구나 라는 느낌이...

 

시집살이를 잘하기 위해서는 벙어리 3년,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 이렇게

석삼년을 살아야했던 시절의 고단함을 표현한 석상이었네요.

그러나, 요즘의 현실에서는 턱도 없는 말이 되었지요.^^

 

 

[관수정]


관수정 옆 작은 문은 사당으로 통하는 문이다.
한편으로는 유교적 질서도 구현되어 있다.
괴헌고택은 'ㅡ'자형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된 튼 'ㅁ'자형 몸채가 자리잡고 몸채 우측 뒤편의 높은 터에는
사당이 별도로 일곽을 이루고 있다.


조상의 공간인 사당, 남성의 공간 사랑채, 여성의 공간 안채가
유교사상에 입각한 위계질서에 따라 각기의 고유영역을 이루며 배치되고
구조양식도 이에 따라 격조를 조금씩 달리하고 있다.

 

 

[사당으로 통하는 협문]

 

[협문을 통해 본 사당 전경]


높은 곳에 자리한 사당. 조상의 영역인
사당은 고택의 동북쪽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사랑채 오른편 협문을 통과해 좁고 가파른
자연석 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사당에 접근할 수 있다.

 

 

[사당쪽에서 안채로 통하는 문]

 

[사당 전경]


사당에 접근하려면 협문을 두 번이나 통과해야하고
별도의 담장 담장으로 쌓여있어 더욱 신성한 장소로 느끼도록 하고 있다.

 

 

 

[사당]


사당 전면에는 네 개의 둥근기둥이 있다.
위계가 높은 건물임을 상징하기위해 일반 사가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둥근기둥을 세운것이다.

 

 

[사당 일각문에서 바라본 전경]


후원이나 사랑채로 통하는 작은 문이나 샛담에 달린
작은 문을 일각문이라 하며, 중요한 전각마다 둘레에 행각과 담장을 치고
일각문 또는 협문을 내어 안으로 통하게 하였다.

 

 

[사당으로 통하는 일각문에서 본 솟을대문]


솟을대문은 행랑채의 지붕보다 높이 세운 대문을 일컬으며,
이에 반해 높이를 똑같이 만든 문이 있는데, 이를 평대문이라고 한다.
살림집이 아닌 궁궐이나 사당처럼 중요한 건물의 출입문은
3칸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를 3칸문이라는 의미로 三門(삼문)이라고 한다.


특히 양반집은 안채, 사랑채, 대문간채, 사당 등을
두루 갖춘 전형적인 양반주택이며, 대문은 행랑채 지붕보다 높게 만든
솟을대문으로 당시 양반의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서민들의 대문은 보통 한 칸으로 만들며
판문을 여닫이로 해 다는 경우도 있으며 가장 보편적인 것은 사립문이다.


문을 크게 달면 대문, 대문 안쪽에 다시 내면 중문,
쉽게 다닐 수 있게 문을 내면 편문, 대문 옆에 조그만 문을 내면 협문,
대문 키가 행랑채와 같으면 평문, 행랑채보다 높으면 솟을대문,
솟을대문 셋이 연속돼 있으면 평삼문, 솟을대문의 기둥이 넷이면 사주문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