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司馬所(사마소)

2015. 12. 19. 06:15문화산책/향교와 서원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89-1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호

 

 

[司馬所(사마소) 전경]

 

[안내판 내용]

 

[담밖 司馬所(사마소) 표석]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합격한 지방의 선비들에게
儒學(유학)을 가르치거나 정치를 토론하던 곳이다.


또한 자기수양을 위해 선비들이 찾던 곳으로,
연산군 때에는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주었다고 한다.


수양을 위해 선비들이 찾던 곳이기도하여 수양이 부족한 사람을 가리켜
'사마소에 입소하여야 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고도 한다.

 

 

[司馬所(사마소) 전경]


사마소는 2개 동의 건물이 있다.
본체에 해당하는 風詠亭(풍영정)은 갓 사마시에 합격한
젊은 신진 사류가 주로 사용하였고, 그 서쪽의 炳燭軒(병촉헌)에는
원로 선비들이 애용하였다고 한다.


이들 노소의 선비들은 엄격한 자리 구별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시로 합석하여 글을 읽고 시문을 논했다고 한다.


임란 때 소실 되었으나, 1741년 진사 이덕록, 손경걸, 유의건
등의 노력으로 중건하였다.

 

 

[司馬所(사마소) 현판]

 

司馬所(사마소)라는 현판은 영조 38년(1762)
당시의 府尹(부윤) 洪良漢(홍양한)이 쓴 것이라 합니다.

 

 

[風詠亭(풍영정) 현판]

 

언제 처음 세웠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宣祖(선조 25년, 1592)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뒤
英祖(영조 17년, 1741)에 다시 지어 風詠亭(풍영정)이라 불렀다.

 

 

[담너머로 담은 司馬所(사마소). 風詠亭(풍영정)]

 

[司馬所(사마소) 전경]


위의 사진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큰 건물은 사마소와 풍월헌이며,
좌측에 보이는 작은 건물은 炳燭軒(병촉헌)이다.
炳燭軒(병촉헌)은 순조 32년(1832) 생원 최기영이 세운 것이라한다.

 

 

[炳燭軒(병촉헌) 현판]

 

[影光臺(영광대) 안내판 내용]

 

[影光臺(영광대)]


李鐘祥(이종상, 1799~1870)은 影光臺記(영광대기)에서
'이 돌은 신라 때 월정교가 되었다가 지금 영광대로 우뚝 섰다.
다시 천년 뒤에 뉘 집의 鎭石(진석)으로 사용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월정교로 있었을 때 군왕을 위한 가악의 소리를 들었고,


영광대가 되어선 문인들의 政事(정사)를 위한 여가에 음영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기술하였다.


안내판에는 司馬所(사마소) 경내로 옮겨 세웠다고 되어 있는데..
경내가 아닌 사마소 밖 우측 담장 아래에 놓여 있었다.


影光臺(영광대) 표석만이라도  안내판에 소개한 것처럼
현 司馬所(사마소) 경내 안에 두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司馬所(사마소) 출입문]


그랬다면, 아마도 굳게 닫힌 사마소 밖에서 관람이 불가하였겠지만..
밖에 놓아둔 것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는..지금도 헷갈린다.

 

 

[재매정에서 본 사마소 전경]


송나라 주희의 시에 나오는 '天光雲影共徘徊(천광운영공배회)'를 줄여
'影光(영광)'이라 이름 지었으며, '影光臺(영광대)'라 불렀다.


하늘의 빛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어린거린다는 뜻으로 옛 사람의 책 속에는
훌륭한 글귀와 경계로 삼아야하는 내용을 같이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며,
독서를 통해서 사람의 심성을 함양해야 한다는 의미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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