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汚溪書院(오계서원)

2015. 12. 24. 06:11문화산책/향교와 서원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55-1
문화재자료 제 475호

 

 

[서원 입구를 지키는 수문목]


주차를 해 놓고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하늘에 닿으려 뻗어나간 서너그루의 소나무
제 눈에는 꼬옥 예전 문을 지키던 守門將(수문장)처럼
오계서원을 지켜주는 守門木(수문목) 같아 보였습니다.

 

 

[汚溪書院(오계서원)과 관리사 전경]


선조 3년(1570) 艮齋(간재) 李德弘(이덕홍, 154~1596)이
학문연마와 심신수련을 위해 건립한 '오계정사' 후신이라 합니다.
여러차례 이건과 중건을 거쳤다 하구요.

 

 

[汚溪書院(오계서원) 전경]


사림의 공론으로 현종 6년(1665) 道存祠(도재사)를
建立(건립)하고 艮齋 先生(간재 선생)의 位牌(위패)를 奉安(봉안)한 후
1692년 迂溪書院(오계서원)으로 昇格(승격)되었다.


1699년과 1707년의 대홍수로 물길이 바뀌어 書院(서원)이 浸水(침수)
被害(수해)가 있자 肅宗(숙종) 37년(1711)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경종 4년(1724)에 그의 장자인 善迂堂(선오당) 李蒔(이시, 156~1636)를 배향하였다.

 

 

[안내판 글 내용]

 

[入道門(입도문) 현판]

 

[정문인 入道門(입도문)]


서원의 출입문인 입도문은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듯 닫혀 있었다.

 

 

[서원 토담과 옆 쪽문]


행여 어디로 들어갈 곳이 없을까?
찾으며, 담을 따라 돌아올라가니 담 사이에 열린 쪽문이 있었다.

 

 

[안쪽에서 담은 서원 옆 쪽문]


옳다구나 하고 들어섰지요.^^

 

 

[汚溪書院(오계서원) 현판]

 

[汚溪書院(오계서원)]


李德弘(이덕홍, 1541~1596) 조선 중기의 학자.
예안 출생. 본관은 永川(영천). 자는 宏仲(굉중), 호는 艮齋(간재).
할아버지는 習讀(습독) 賢佑(현우)이고, 아버지는 증참판 忠樑(충량)이며,
어머니는 나주박씨로 부사직 承張(승장)의 딸이다.
형조참판 賢輔(현보)의 종손자이다.

 

 

[明倫堂(명륜당) 현판]

 

[汚溪書院(오계서원) 강당인 明倫堂(명륜당)]


10여 세에 李滉(이황)의 문하에 들어가 오로지
학문에 열중하여 스승으로부터 자식처럼 사랑을 받았다.


모든 학문에 뛰어났으나 특히 역학에 밝았다.
선조 11년(1578) 조정에서 이름난 선비 아홉 사람을 천거할 때
제4위로 뽑혀 集慶殿參奉(집경전참봉)이 되고, 이어 宗廟署直長(종묘서직장).
世子翊衛司副率(세자익위사부수)를 역임하였으며,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를 따라 성천까지 扈從(호종) 하였다.

 

 

[汚溪書院(오계서원)]


이 때 상소문에 龜船圖(귀선도)를 첨가하여 바다에는
거북선과 육지에는 거북거(龜車)를 사용할 것을 진언하였다.
다음해 봄에 영춘현감으로 나가 난리 중에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간재 선생은 퇴계 이황 선생이 가장 총애하는 제자로
애, 간, 월, 학 네 분(서애, 간재, 월천, 학봉) 중 한 분으로
유학자요 과학자요 효자로 널리 알려진 분으로 자연과 계절을 노래한
그의 한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周易質疑(주역질의). 四書質疑(사서질의).
溪山記善錄(계산기선록). 朱子書節要講錄(주자서절요강록). 간재집'
등이 있다.

 

 

[觀省齋(관성재) 현판]

 

[觀省齋(관성재)]


李蒔(이시, 1569~1636) 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中立(중립), 호는 善汚堂(선오당). 본관은 永川(영천). 안동 출신.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李德弘(이덕홍)이며, 鄭逑(정구)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서 13, 14세에 經史(경사)를 통달하였다.


이 때 아버지의 道(도)를 굽혀서까지 명예를 따르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받들어, 벼슬할 것을 단념하고 학업에만 전념하였다.


그의 글 중, 사람이 순풍에 돛을 단다면 험한 길도 쉽게 갈 수 있지만,
출발을 잘못하여 폭풍우를 만나면 배는 뒤집히고 사공은 익사한다는
국문시조 操舟候風歌(조주후풍가)가 유명하다.

 

 

[觀書軒(관서헌) 현판]

 

[觀書軒(관서헌)]


만년에 迂川(오천)의 하류에 迂溪書堂(오계서당)을 짓고
후진양성에 힘써 많은 학자들을 길러내었다.


그의 학행을 흠모하여 많은 선비들이 모여들었는데,
그것을 기록한 迂溪書堂同話錄(오계서당동화록)이 있다.
친상 중 집상하느라고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저서로는 '선오당일고 2권'이 있다.
뒤에 司僕寺副正(사복시부정)에 추증되고, 오계서원에 제향되었다.

 

 

[驗爲僚(험위료) 현판]


명륜당 강당 벽에 걸려있는 驗爲僚(험위료) 현판

 

 

[汚溪書院(오계서원)]


현존하는 경내의 건물로는 道尊祠(도존사), 강당, 觀省齋(관성재),
驗爲寮(험위료), 내삼문, 入道門(입도문), 君子亭(군자정), 전사청, 廚所(주소) 등이 있다.


서원의 배치는 전면에 講學(강학) 공간인 講堂(강당)이 있고,
후면에 祭享(제향) 공간인 祠宇(사우)가 배치되어 있는
前學後廟(전학후묘)의 구조로 되어 있다.


도존사는 享祀(향사)를 지내는 祠宇(사우)로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오계서원에는 책판 300장과 각종 현판이 소장되어 있다고 전해지는데,
상당수 분실한 후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위탁 관리 중이라 한다.

 

 

[君子亭(군자정) 전경]


서원 바같쪽 아래에 세워져 있는 건물입니다.
이곳 소개는 정자와 누각 에서 소개해 드릴까합니다.

 

 

[烏骨鷄(오골계)]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려 주차한 곳으로 돌아오는데...
입구쪽에서 서너마리의 오골계가 한가하게 노닐고 있었습니다.
그냥 올 수 없지요. 얼른 다시 디카를 꺼내들고 줌으로 당겨 담았죠.


이웃님들께 눈 보양이라도 시켜드리려구요.^^

 

 

[烏骨鷄(오골계)]


닭의 한 품종으로 동남아시아 원산이며,
몸은 둥글고 미끈하며 살, 가죽, 뼈가 모두 암자색이다.


깃털은 보통 흰색이나 검은색, 적갈색도 있다.
민간에서 風病(풍병), 濕症(습증), 허약증 등에 약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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