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化鄕校(봉화향교)

2015. 12. 22. 06:18문화산책/향교와 서원

 

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봉성리 267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3호

 

 

[奉化鄕校(봉화향교) 전경]


향교는 선현들에 대한 제사와 학문을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세워진 공립학교이다.


고려 17대 인종 5년(1125)에 각 지방에 향학당을 세우라는
교시에 의해 처음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한다.


조선시대 태종 이후에는 유교를 진흥할 목적으로
府(부), 牧(목), 郡(군), 縣(현) 마다 하나씩 건설하여 나갔다.


정문인 由敎門(유교문)은 작고 아담하다.
키도 그렇게 높지 않으며,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이다.

 

 

[由敎門(유교문)]


향교의 배치는 由敎門(유교문). 樓閣(누각). 明倫堂(명륜당).
內三門(내삼문). 大成展(대성전)의 순서로 되어 있는데, 앞에는
가르치는 곳을 두고 뒤에는 제를 지내는 廟堂(묘당)을 두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전면 1칸을 개방시킨
前退形(전퇴형)의 평면으로 구성된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역대 성현 27분을 모셨다.


명륜당은 좌측에는 온돌을 두고 우측에는 우물마루로 꾸민 홑처마 합각지붕으로 되어 있다.

 

 

[하마비와 안내판 뒤쪽 봉화향교]


'大小人員皆下馬(대소인원개하마)'라는
글자가 종으로 새겨져 있는 돌기둥이며, 통칭 '下馬碑(하마비)'라 이른다.

 

 

[안내판 글 내용]

 

[奉化鄕校(봉화향교)]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팔작지붕에 홑처마로 된
6칸의 명륜당, 5칸의 東齋(동재), 4칸의 西齋(서재), 6칸의 누각,
內三門(내삼문), 由敎門(유교문), 廚舍(주사) 등으로 되어 있다.


향교의 주 출입문인 由敎門(유교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담 밖에서 담은 奉化鄕校(봉화향교) 현판]


봉화향교의 멋을 더해주는 봉화향교 현판은 누각의 2층 처마 밑에 달려있다.


흰색 바탕에 검은 색 글씨, 가장자리를
사선이 되게 틀을 붙이고 푸른색으로 테두리를 칠한 현판이다.


끝에 '尹用求 書(윤용구 서)'라는 글씨가 써 있다.
기둥은 다 주사칠이 되어 있고, 판자는 나무의 색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동재일까? 서재일까? 아니면 주사일까?]


1950년에는 향교내에 鳳城高等公民學校(봉성고등공민학교)를
설치하였다가 1975년에 폐교되었다.


학교로 사용하는 동안 크게 훼손된 것을 1975년에 군수 權明欽(권명흠)과
典校(전교) 李成鎬(이성호)의 노력으로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다.

 

 

[담 너머로 담은 奉化鄕校(봉화향교)]


조선 세종 때에 賢儒(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小學(소학)'을 장려한 김안국(1478~1543)은 의성김씨로
자는 國卿(국경), 호는 慕齋(모재)이다. 부친은 김연이다.
조광조, 기준 등과 함께 김굉필의 문인이다.


중종 11년(1517)에 경상도 관찰사로 파견되어 각 향교에 '小學(소학)'을 장려하였다.
봉화향교에도 역시 '小學(소학)' 공부를 독려하는 김안국의 시판이 게시되어 있다.


선조 12년(1579)에 현감 趙穆(조목)이 중건하였고,
1925년에 군수 徐丙麟(서병린)이 중수하였다.


조목(1524~1606)은 횡성조씨로 자는 士敬(사경), 호는 月川(월천)이다.
아버지는 조대춘, 어머니는 안동권씨이며, 퇴계 이황의 제자로 도산서원에 배향되었다.

 

 

[노거수(은행나무)와 봉화향교]

 

[향교 내 노거수(은행나무)]


향교는 들어가 볼 수 없고, 담너머로 사진을 담다가
문득 위를 쳐다보니 향교 내 노거수 은행나무에 은행이 다닥다닥 달려있었다.

 

 

[향교 주변 과수원의 익어가는 사과]

 

[大成殿(대성전)]


문묘의 시설 가운데 공자의 位牌(위패)를 봉안. 享祀(향사)하는 건물.


大成殿(대성전)은 성균관에 딸린 건물로,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유학을 강의한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줌으로 당겨 담아 본 大成殿(대성전)]


大成殿(대성전)에는 五聖(5성),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

釋奠(석전)을 奉行(봉행)하며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소장전적은 거의 散失(산실)되었으며,

'奉化鄕校任錄(봉화향교임록)'.'入齋錄(입재록)'. '司馬錄(사마록)'.

'鄕校原任錄(향교원임록)' 등은 이 지방 향토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현재 전교 1명과 掌議(장의)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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