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9. 06:27ㆍ문화산책/향교와 서원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내림리
기념물 제 166호
[伊山書院(이산서원) 전경]
영주의 첫 서원으로 명종 13년(1558)에 군수 안상이
창건하였으며, 선조 5년(1572) 사당을 세워, 이황의 위패를 봉안,
선조 7년(1574)에 사액을 받았다.(도산서원과 같은 해임)
앗 나의 실수 가방에 넣었다 꺼냈다 하는 사이에
p에 맞춰있어하는데, s에 맞춰져 있는것을 모른채
사진을 찍었기에.... 사진이 허옇게 나왔네요...ㅠ.ㅠ
다시 가서 담아 올 수 없으니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냥 올립니다.
[伊山書院(이산서원)]
예로부터 영주는 문예를 숭상하는 기운이 높았던 곳으로,
이곳 이산리에는 선비양성을 위한 기금이 약간 마련되어 있었으나,
館舍(관사)가 없어서 선비들이 모일 장소가 없었다.
[안내판 전경]
[안내판 글 내용]
[伊山書院(이산서원) 일각문]
마침, 새로 부임한 안군수가 인재양성, 교학부흥에 뜻이 있어,
선비들의 뜻을 수렴하여 學舍(학사)를 건립하니, 이때 경비나 노역을
일체 민간에게 부담시키지 않아, 안군수는 마을 주민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다.
서원의 출입문인 일각문이 닫혀 있어서...
담밖에서 담을 수 밖에 없었지만,
담밖에서도 담기가 쉽지 않아 줌으로 당겨 담았습니다.
[伊山書院(이산서원)]
이산서원이라는 이름은 이 마을의 지명인 이산리에서 따왔으며,
敬止堂(경지당), 誠正齋(성정재), 進修齋(진수재), 志道門(지도문)등이
세워져 있었으나 지금은 敬止堂(경지당)만 남아 있다.
[敬止堂(경지당)]
이산서원은 독서법 등을 규정한 원규를 만들어
당시의 서원 운영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퇴계가
1559년 찬한 이산서원원규는 서원 운영의 정형화를 제시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한다.
[敬止堂(경지당) 현판]
[敬止堂(경지당)]
李滉(이황, 1501~1570)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眞寶(진보). 자는 景浩(경호), 호는 退溪(퇴계). 退陶(퇴도). 陶?(도수).
경상도 禮安縣(예안현) 溫溪里(온계리 :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좌찬성 埴(식)의 7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7개월에 아버지의 喪(상)을 당했으나,
현부인이었던 생모 박씨의 훈도 밑에서 총명한 자질을 키워 갔다.
[敬止堂(경지당)]
처음에는 강학의 장소로만 이용되었으나
후에 퇴계 이황을 배향하면서 제사의 기능을 겸하게 됐다.
본래 군치에서 6~7리 되는 번고개 아래(휴천1동 구서원마을 뒤편)에 있었으나
광해군 6년(1614)에 하천을 내려다보는 좋은 경관을 갖춘 현재의 곳으로 이전됐다.
[서원 일각문 앞 전경]
1574년에 伊山(이산)이라 사액되었는데
이 해는 이황을 모신 도산서원이 창건된 해이기도 하며
이산서원은 옛 榮川(영천) 지방의 첫 서원이자 유일한 사액서원이었다.
[서원앞 들꽃]
[다시 담아 본 伊山書院(이산서원) 일각문]
이 건물을 마련한 영주 주민들은
퇴계선생에게 부탁해서 伊山書院記(이산서원기)를 썼다.
서원기와 함께 퇴계는 受學(수학)과 居齋(거재) 규칙,
교수 실천요강, 독서법 등으로 구성된 원규를 만들어 전했다.
이 원규는 '사서오경'을 근본으로 할 것과 뜻이 바르지 못하고
행실이 좋지 않은 자는 의논하여 배척할 것, 그리고 서재에 조용히 앉아 독서하며
다른 서재를 찾아가 잡담하지 말 것 등 원생들이 가져야 할 일상의 행동지침과
공부하는 방법과 학문의 목표 등이 자상하게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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