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岑書院(도잠서원)

2015. 12. 12. 06:10문화산책/향교와 서원

 

소재지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 140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 100호

 

 

[道岑書院(도잠서원) 전경]

 

[道岑書院(도잠서원) 옆 전경]


예전에 들렸을 때 이곳은 수리중이라 담지 못하고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새로 건축한 道岑書院(도잠서원)만

들려보았기에 이쪽으로 걸음하는 길에 행여나 궁금하여 다시 들려보기로 했다.


역시 말끔하게 정리 되어 보수된 道岑書院(도잠서원)을 만날 수 있었다.

 

 

[도잠서원 안내판 글 내용]

 

[道岑書院(도잠서원) 강당]


曺好益(조호익, 1545~1609) 조선시대 문신.

자는 士友(사우). 호는 芝山(지산) 첫 시호는 貞簡(정간),

나중 시호는 文簡(문간)  李珥(이이)의 문인.

퇴계학맥의 우뚝한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芝山(지산) 문신으로 의병을 일으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웠다.

그런데도 무고를 당해 온 가족이 강동으로 옮겨 살았다.

살림이 빈곤하여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살았지만, 그러나 결코 뜻을 굽힌 적은 없었다.

 

 

[道岑書院(도잠서원) 처마]


高宗(고종) 5년(1868)에 철폐되었다가

1914년 복원 1981년 정부의 지원으로 보수, 정화되었다.

 

 

[道岑書院(도잠서원)]


처음 지었을 당시에는 'ㅡ'자형으로 된 강당 5칸과
지산이 만년에 학문을 연구했다는 망회정 등 6동로 되어있었지만
현재는 2동밖에 없으며 건립 당시에는 '芝峰書院(지봉서원)'이라 했다.

 

 

[道岑書院(도잠서원)]


肅宗(숙종) 4년(1678) '道岑(도잠)'

편액을 받아 '賜額書院(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새로 신축한 道岑書院(도잠서원) 전경]


서원의 삼문은 굳게 잠기어 침묵하고 있었다.
낮은 담장 밖에서 안을 보고 담을 수도 있었지만,
예전에 담았던 곳이라 겉모습만 담는 것으로 그쳤다.

 

 

[새로 신축한 道岑書院(도잠서원) 옆 전경]


고요속에 잠긴 도잠서원의 모습만 보는 것도 한결 운치가 있고 좋았다.

 

 

[서원앞 저수지 1]

 

선조 8년(1575) 경상도도사 崔滉(최황)에 의해 檢督(검독)으로

임명되었으나 부모상복을 벗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이듬해 강동에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후진을 양성하여
關西夫子(관서부자)의 칭호가 特賜(특사)되었다.


夫子(부자)라 함은 공자나 주자같이 덕행이 높아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에 대한 존칭이다.


서원 앞 저수지에도 가을은 깊어가고......

 

 

[서원앞 저수지 2]


물 위에 비친 세상은 조용하기만 하고
치마폭 주름처럼 아늑하게 두른 산 자락도 또한 은근한 멋을 풍긴다.

 

 

[서원앞 저수지 3]


春日偶成(천일우성)
봄날에 우연히 짓다 / 조호익


門外晴雲洞外塵(문외청운동외진)
문밖 맑은 구름, 동네 밖엔 티끌인데
蕭然林下一幽人(소연림하일유인)
쓸쓸한 숲에는 세상을 등진 한 사람.


滿庭花落時行坐(만정화락시행좌)
뜰에 가득 꽃이 떨어질 때, 가다가 앉으면서
不信人間有錦茵(불신인간유금인)
세상에 비단 자리 있음을 믿지 않네

 

아.....숨 죽인 고요가 이곳에도...

 

 

[저수지쪽에서 담은 道岑書院(도잠서원) 전경]


조선의 주자학에 지대한 공로와 영향을 미친 이황의 사상은
다시 高弟(고제) 중의 한 사람인 曺好益(조호익)에게 전승되었다.
이 두 분 선생께서는 특히 포은 선생과는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서원앞 저수지 4]


퇴계 선생은 포은 선생과의 학문적 연관은 물론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임고서원 건립에도 관여 하셨으며,
지산 선생께서는 관서로부터 이곳으로 은거하시어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으로 여생을 보내신 것이다.

 

강동에서 우연히 짓다. / 조호익

모진 견책 받고 천리 먼 이곳까지와
관서 땅에서 십년을 보내는 신세
세상살이는 지낼수록 험난하지만
인정은 오랠수록 더욱 새롭네


운명은 각박하여 가다가는 또 넘어지고
성품고 못나 걸핏하면 타박 받네
오직 벗 삼느니 책이려니
한가할 양이면 다시금 가까이 하네

 

 

[저수지 둔덕 노거수]

굳굳하게 서 있는 노거수와
비록 허리는 굽혔을 망정 그 고고함이

당당해 보이는 노거수 이렇게 어울려 살아가는 거라

말없이 실천으로 보여주는듯 하였다. 

예전에 올리지 못한 복원중이던 원래의

道岑書院(도잠서원)만 몇 컷 담고,
풍경을 위주로 올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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