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역답사(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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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峯(약봉) 金克一(김극일) 묘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산161-1 [사빈서원에서 담은 묘소 전경] [도로에서 담은 묘소 전경] 사빈서원을 둘러 본 후 저 멀리 선명하게 보이는 묘소를 찾아 출발하였지만, 어디로 해서 가는지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해 내려갔다 올랐다는 반복. [도로에서 줌으로 당겨 담은 묘소 전경] [도로에서 줌으로 당겨 담은 묘소 전경 2] 결국 입구를 못 찾아 돌아와야 하는가 하고 도로에서 줌으로 당겨 묘소를 담아 되돌아 오려다 드디어 입구를 찾았다. [도로변 표시석] 약봉 김선생 묘소 입구 표시석이 어찌나 반가운지 그리운 임을 만난듯 가슴이 두근두근..^^ [표시석 옆으로 난 묘소 가는 길] 무조건 올랐지요. 묘소를 향해~ [묘소 아래쪽에서 담은 전경] 金克一(김극일, 1522~1585) 자 伯純..
2016.06.14 -
시선 김삿갓 유적지와 묘역
소재지 :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詩仙 金삿갓 遺蹟地(시선 김삿갓 유적지) 표석 碑(비)] 방랑 시인 김삿갓의 유명한 일화. 언제나 그렇듯 갓쓴 선비네들은 정자에 앉아 옆에 계집을 꿰어차고 술을 마시며 시를 짓고 있었다. 그때 한 삿갓을 쓴 행인이 그들의 틈에 끼더니 시를 쓸테니 술대접을 해 달라고 했다. 양반네들이 그 행인을 쫓으려고 했지만 한 양반이 호감을 느끼고는 선비들을 말려서 그 삿갓쓴 행인에게 시를 지어보게 했다. 그 행인은 정자에 앉자마자 과제를 내라 했습니다. 너무 당당한 모습에 당황한 양반들. 양반들은 꾀를 내어 자신들의 이름을 이용해 詩(시)를 지으라 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밝혔다. '원 생원, 문 첨지, 서 진사, 조 석사' 그 말을 듣자 말자 대뜸 종이위에 글을 쓰놓고는 술을..
2016.03.31 -
창녕조씨 시조 태사공 조계룡의 묘소와 種德齋(종덕재)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노당리 1115-2 [종덕재 정당 솟을 삼문 전경] 창녕조씨 시조인 太師公(태사공) 曺繼龍(조계룡)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영조 33년(1757)에 세운 재실이다. [안내판과 종덕재 정당 솟을삼문] [안내판 글 내용] [종덕재] 순조 17년(1817)에 묘단비를 세우고 순조 32년(1832)에 묘각을 중건하여 種德齋(종덕재)라 명명하였다. 1929년 창녕조씨 대종회에서 중수하였고 6.25전쟁 때 일부 파손되었으나 다시 중수하였다. 매년 음력 10월 초정일 창녕조씨 문중에서 묘제를 거행하고 있다. [종덕재 2] 정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서재를 두고 정면에 솟을대문인 영은문을 배치하였으며 정당 옆에 3동의 부속사를 두어 二口자의 배치 구조이다. 정당은 정면 6칸, 측면 ..
2016.03.16 -
退溪(퇴계) 李滉(이황) 선생 묘소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산 24-29번지 [퇴계 이황선생 묘] 退溪(퇴계) 李滉(이황, 1501~1570)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동방18현의 한사람, 본관 진보, 호 退溪(퇴계), 도산 온혜리에서 좌찬성 李埴(이식)과 춘천박씨 사이의 7남1녀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묘와 상석과 묘비] 6세에 천자문, 12세에 숙부로부터 논어를 배우고 특히 도연명의 시를 좋아하였으며, 20세에는 주역공부에 몰두하였다. 27세에 진사, 성균관에 들어가 사마시에 급제한뒤 3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官界(관계)에 진출 하였다. 박사. 전적. 지평. 성균관사성을 역임하고 을사사화 후 건강을 이유로 관직을 사퇴하고 46세에 고향인 토계(하계)에 양진암을 지어 독서에 전념하는 구도생활에 들어갔다. [묘비] 묘비의..
2016.02.23 -
안성남사당 바우덕이 묘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용리 산1번지 [바우덕이 묘와 안내판 전경] [안내판 글 내용] 대중문화의 원류를 찾는 중심점에는 항상 사당패가 자리한다. 그리고 바우덕이라는 유일무이한 여자 꼭두쇠가 사당패를 대표한다. 즉 바우덕이는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를 개척한 인물로서 연예의 효시가 되는 것이다. 이곳 안성 청용리 불당골 마지막 산동내 개울 건너 가파른 산허리엔 유명한 사당패 바우덕이라는 23세의 꽂다운 女人이 묻힌 墓가 있는 곳이다. 생전의 바우덕이가 줄타기를 하듯 바우덕이의 묘로 오르는 돌계단도 가파르다. [碑(비) 옆면에 새겨진 글] 바우덕이는 1848년 안성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출생하여 1853년 안성 서운면 청룡사 안성 남사당 에 당시 5세로 입당하여 선소리, 줄타기, 풍물, 무동, 새..
2016.02.12 -
黃喜先生 墓(황희선생 묘)와 사당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 산1 시도기념물 34호 [주차장에서 본 사당과 묘역 전경] 조선 시대를 통하여 가장 명망 있는 재상으로 칭송되는 尨村 黃喜(방촌 황희, 1363~1452)선생의 묘이다. 황희는 長水(장수) 황씨로 개성에서 태어나 1389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다 조정의 요청으로 관직에 나오게 되었으며, 세종 13년 의정부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부사에 올라 국가대사를 돌보았다. [사당 삼문 전경] 세종 31년 86세로 은퇴한 후에도 세종이 국가의 중대사를 자문하는 등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농사개량에 힘써 '經濟六典(경제육전)'을 펴냈다. 4군 6진의 개척과 외교와 문물제도의 정비,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문물의 진흥 등을 지휘, 감독하여 조선 왕조를 통하여 ..
2016.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