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역답사(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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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淵(박연) 墓所(묘소)
소재지 :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산 49-1 [景蘭齋(경난재) 전경] 박연선생의 재실(재각) 이곳에서 우측 산길을 700m쯤 오르면 묘소가 있다. [경난재 안내글 내용] [묘역 아래쪽 비석군] [大提學文簡公朴先生神壇碑(대제학문간공박선생신단비)] [묘소 안내판 글 내용] [박연 선생 묘 전경] 朴堧(박연, 1378~1458) 초명 然(연). 자 坦夫(탄부), 호 蘭溪(난계). 아버지 天錫(천석)은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어머니는 경주 김씨로 통례문부사 金珸(김오)의 딸이었다. 부인은 礪山宋氏(여산 송씨)로 판서를 지낸 宋贇(송빈)의 딸로 자녀는 3남4녀를 두었는데 맏아들 孟愚(맹우)는 현령을 지냈고, 둘째아들 仲愚(중우)는 군수를 지냈으며, 막내아들 季愚(계우)는 박팽년 등 사육신들의 단종 복위사건..
2016.08.26 -
趙光祖先生(조광조선생)의 묘역과 絶命詩碑(절명시비)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산55-1 [한양조공정암선생묘역 안내 표지석] 趙光祖(조광조,1482~1519) 중종 5년(1515) 사마시에 합격한 후, 새롭게 변화를 모색하고 있던 시대적인 분위기를 타고 관직에 나섰다. 그는 관직에 있으면서 유교로 정치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至治主義(지치주의)에 입각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였고 향촌의 상호부조를 위하여 '呂氏鄕約(여씨향약)'을 8도에 실시하였다. [표지석 뒷면] 金銓(김전). 남곤. 高荊山(고형산). 심정 등은 熙嬪洪氏(희빈홍씨)의 아버지인 홍경주를 중심으로 희빈홍씨를 통해 '나라의 인심이 모두 조광조에게 돌아갔다'고 과장하면서 그대로 둘 경우 왕권까지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走肖爲王(주초위왕)'이라는 글자를 나뭇잎에 새겨 왕이..
2016.08.05 -
忠貞公(충정공) 籠巖(농암) 金澍(김주)선생 묘
소재지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 51번지 [충렬당에서 담은 묘소 전경] 우거진 숲 사이로 멀리 산위에 보이는 곳이 농암선생의 묘가 있는 곳이며, 선생의 묘 앞쪽으로는 후손들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합니다. 이곳은 제가 다녀온 곳이 아니라, 남편이 카페회원들과 다녀오며 담아 온 사진으로 대신하기에... 농암 선생의 묘만 소개하려합니다. [충정공 농암 김주 묘] 恭讓王(공양왕)때인 28세에 예의판서로 賀節使(하절사)가 되어 남경을 다녀오던 중 압록강에서 역성 혁명으로 조선이 개국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공은 3일동안 통곡하고 부인에게 서찰을 보내어 "충신은 불사이군이니 내 만약 강을 건너면 몸둘 곳이 없을 것이오. 이미 부인이 잉태하였음을 알고 있으니 만약 아들을 얻으면 이름을 揚燧(양수)라 하고 딸을..
2016.08.04 -
鶴峯(학봉) 金誠一(김성일) 神道碑(신도비)와 墓傍石(묘방석)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 산75-3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12호 [학봉 김성일 신도비각 전경] 神道碑(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이며, 墓傍石(묘방석)은 墓(묘)의 바로 옆에 두어 墓(묘)의 주인공을 밝혀두는 것이다. 이 비는 조선시대 중기 柳成龍(유성룡)과 더불어 퇴계학파를 대표하였던 학봉 김성일 선생의 묘에서 약 50m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영남학파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이들 금석자료의 가치와 그 역사적 의미는 더욱 커진다. 신도비는 건립된 시기로 보면 경상북도 내에서 다른 비석에 비해 오래되었고, 규모가 거대하다. [신도비 머릿돌] 신도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신과 이수를 하나의 돌로 조각하여 세워놓았으며, 머릿돌에는..
2016.06.28 -
반남박씨 안동 입향조 박숙 묘와 德洞齋舍(덕동재사)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2리 640 [德洞齋舍(덕동재사) 전경] 안동입향조인 朴䃞(박숙)의 묘제를 위한 재실로 박숙 묘하에 있다. [우측에서 담은 德洞齋舍(덕동재사) 전경] 재사란 후손들이 조상의 묘를 수호하고 墓祭(묘제)를 받들기 위해 산소 아래나 가까운 곳에 지은 건물을 칭한다. [德洞齋(덕동재) 현판] [우측에서 담은 德洞齋舍(덕동재사)] 그 명칭에 있어서도 齋舍(재사), 齋室(재실), 齋宮(재궁), 齋閣(재각)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는데 대개 齋舍(재사)라 지칭한다. [德洞齋舍(덕동재사) 내부] 묘소와 묘제를 수호하기 위하여 조선 중기에 창건하였는데, 오랜 세월지나면서 건물이 낡아져 새롭게 중수하였다 한다. [좌측에서 담은 德洞齋舍(덕동재사)] 이곳의 옛 지명이 '德洞(덕동)'이기 때문..
2016.06.22 -
고려말의 문신 남휘주, 남민생 부자 묘
소재재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 [재사쪽에서 담은 設壇(설단) 전경] 보통 재사의 누마루는 산소를 바라보는 법인데, 南興齋舍(남흥재사)는 '設壇(설단)'쪽을 바라보고 있다. 남흥재사를 둘러보지 못하여 궁금하시다면 요기 클릭하셔서 들려보셔요. [유허비와 설단기념비 전경] '壇(단)'은 묘를 확인하기 어렵고 실전되어 찾을 수 없을 때 조상을 모시는 '設壇(설단)'이다. 여러 분의 조상을 合祀(합사)하여 제사를 모실 경우도 '壇(단)'을 차려 놓는다. 이럴 때는 神主(신주)를 모실 수가 없다 한다. [설단기념비 글 내용] [유허비 전경] [묘소로 가는 길] 설단옆 도로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우측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 그곳을 조금 더 오르면 묘소로 가는 길이 있지만, 무성한 풀들이 우거져 자칫하면 ..
2016.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