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2. 06:07ㆍ뿌리를 찾아서/묘역 답사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2리 640
[德洞齋舍(덕동재사) 전경]
안동입향조인 朴䃞(박숙)의 묘제를 위한 재실로 박숙 묘하에 있다.
[우측에서 담은 德洞齋舍(덕동재사) 전경]
재사란 후손들이 조상의 묘를 수호하고 墓祭(묘제)를
받들기 위해 산소 아래나 가까운 곳에 지은 건물을 칭한다.
[德洞齋(덕동재) 현판]
[우측에서 담은 德洞齋舍(덕동재사)]
그 명칭에 있어서도 齋舍(재사), 齋室(재실), 齋宮(재궁),
齋閣(재각)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는데 대개 齋舍(재사)라 지칭한다.
[德洞齋舍(덕동재사) 내부]
묘소와 묘제를 수호하기 위하여 조선 중기에 창건하였는데,
오랜 세월지나면서 건물이 낡아져 새롭게 중수하였다 한다.
[좌측에서 담은 德洞齋舍(덕동재사)]
이곳의 옛 지명이 '德洞(덕동)'이기 때문에
齋舍(재사) 명칭도 德洞齋舍(덕동재사)라 하였다 한다.
태종 때 좌의정을 지낸 朴誾(박은)의 증손 朴䃞(박숙)이
세조 때 입향하여 월곡면 운곡, 노산, 감호 등지에 터를 잡고 살았다.
[德洞齋舍(덕동재사) 뒤쪽]
덕동재사 뒤쪽으로 묘비와 망두석이 보였다.
묘비가 있는 쪽으로 올라갔지만, 우리가 찾던 묘소가 아닌듯 하다.
[묘비]
묘비와 망두석만 남아 있어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묘소는 보이지 않고 무성한 수풀만 우거져 더 이상 나아감을 허락하지 않았다.
[묘비]
묘비에는 충의위 반남박씨 승평 지묘라 새겨져 있다.
누구실까? 궁금하여 다녀와서 검색을 해 본 결과
승지공 박숙의 둘째아들 진의 세째 아들이라 하네요.
[반남박씨 안동입향조 승지공 박숙 묘와 묘비]
반남박씨 承旨公(승지공) 朴䃞(박숙, 1444~1526)
본관 潘南(반남) 자 支柱(지주) 秉鈞(병균)의 아들이다.
덕행과 문예가 있었으며, 蔭補(음보)로 사직을 역임하였다.
[좌측에서 담은 묘소 전경]
승지공 박숙(1444~1526)은 3형제를 두었는데,
맏아들 침은 영주 무섬(水島里). 둘째 璡(진, 1477~1566)은 안동.
셋째 형은 영주 귀내(古峴)에 정착하여 자손들이 뿌리내리고 살았다.
판관공의 후손들은 영주와 안동에서 望族(망족)으로
번성하였는데, 문과가 14장에 초시가 30장에 이른다 한다.
望族(망족) : 명성과 덕망이 있는 집안
[상석]
묘소앞이 너무 협소하기도 하고 아랫쪽 경사가 심하여
전체의 앞 모습을 담기가 쉽지 않아 이렇게 밖에 담을 수 밖에 없었다.
[묘소 주변 엉겅퀴]
[묘 뒤쪽 전경]
묘 뒤쪽으로 2기의 묘가 더 있었지만,
묘비가 없어서 어느분의 묘인지는 알지 못하였지만...
집안 어르신의 묘소인듯 짐작할 뿐이었다.
[묘 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사진속 저 분의 도움으로 쉽게 묘소를 찾을 수 있었다.
남편과 주고 받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난 앞뒤로 다니며, 주변을 담느라 총총
[맨 뒤쪽 묘에서 담은 안산 전경]
안동 감호 지역이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자
진의 강학지소였던 隱谷書堂(은곡서당)은 안동시 송천동으로 이건하였다.
[덕동재사 앞쪽 감자밭에 핀 감자꽃]
목적지를 정해놓고 네비양의 안내따라 길을 찾다보면
때론 얌전하게 잘 알려주어 쉽게 찾는 곳도 있지만,
때론 무슨 심술이 났는지 안내를 잘못해주어 애를 먹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잘 알려주어 고마워는 한답니다.^^
덕동재사와 승지공 박숙 묘소 답사를 마치고,
다음의 일정을 위하여 다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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