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貞公(충정공) 籠巖(농암) 金澍(김주)선생 묘

2016. 8. 4. 05:56뿌리를 찾아서/묘역 답사

 

 

소재지 :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궁기리 51번지

 

[충렬당에서 담은 묘소 전경]

우거진 숲 사이로 멀리 산위에 보이는 곳이
농암선생의 묘가 있는 곳이며, 선생의 묘 앞쪽으로는
후손들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합니다.

이곳은 제가 다녀온 곳이 아니라, 남편이 카페회원들과 다녀오며
담아 온 사진으로 대신하기에... 농암 선생의 묘만 소개하려합니다.

 

[충정공 농암 김주 묘]

恭讓王(공양왕)때인 28세에 예의판서로
賀節使(하절사)가 되어 남경을 다녀오던 중
압록강에서 역성 혁명으로 조선이 개국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공은 3일동안 통곡하고 부인에게 서찰을 보내어
"충신은 불사이군이니 내 만약 강을 건너면 몸둘 곳이 없을 것이오.
이미 부인이 잉태하였음을 알고 있으니 만약 아들을 얻으면 이름을
揚燧(양수)라 하고 딸을 얻으면 命德(명덕)이라 하시오.
또한 내 조복과 신발을 信物(신물)로 보내니 부인이 유명을 달리 할 때
이 물건들을 합장하여 우리 부부의 묘를 하고, 내가 강을 떠나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날을 나의 기일로 할 것이며 결코 誌文墓碣(지문묘갈)을 쓰지 말라."
고 하였다.

그리고 공은 표연히 중국으로 되돌아가니 중국의 명태조는
공의 높은 절의에 감동하여 본국에서와 같은 예부상서의 벼슬을 제수했으나
끝내 받지 않고 평생 荊楚(형초)땅에 숨어살았다.
그러나 명태조는 특명으로 종신토록 예부상서의 록을 지급하게 하였다.

 

[묘비]

근래에 와서 세운것인지 묘비가 무덤옆을 지키고 있네요.

 

[묘뒤에서 담은 안산]

후세에 그 높은 덕을 추모하여 선산군도계면
月林洞(월림동)에 月岩書院(월암서원)을 창건하여
공을 배향하였으며 숙종 20년(1694) 尙義(상의)라 사액하였다.

 

[묘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정조 22년(1798) 忠貞(충정)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不조之命(부조지명)을 내리고 왕이 친히 來格廟(내격묘)란
묘호와 함께 제문을 지어 좌승지 李益運(이익운)으로 하여금 치제케하였다.

月岩書院(월암서원) 외에도 안동 孤竹書院(고죽서원). 양산 松山書院(송산서원).
고창 雲谷書院(운곡서원). 곡산 東津祠(동진사)에서 향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