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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蘭溪(난계) 生家(생가)
소재지 :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308 [蘭溪朴堧生家(난계박연생가) 전경] 우리나라 3대 樂聖(악성)에 속하는 蘭溪(난계) 朴堧(박연). 本貫(본관)은 密陽(밀양). 시호는 文獻(문헌) 初名(초명)은 然(연)이었고, 堧(연)은 후에 개명한 것이다. 字(자)는 탄보이고, 호는 蘭溪(난계)이니, 박연은 바위틈에 날렵히 피어난 고고한 蘭草(난초)의 자태에 매료되어 자신의 호를 蘭溪(난계)라고 했다. [우진각(생가 안 기와집)] 고려 우왕 4년(1378) 8월 20일 삼사좌윤 박천석의 아들로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서 태어났다. 태종5년(1405년)인 28세에 생원이 되었고, 34세(141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교리, 관습도관제조, 악학별좌, 대제학 등을 역임후 세조 2년(1456년)에 삼남 계우..
2016.08.23 -
趙光祖先生(조광조선생)의 묘역과 絶命詩碑(절명시비)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산55-1 [한양조공정암선생묘역 안내 표지석] 趙光祖(조광조,1482~1519) 중종 5년(1515) 사마시에 합격한 후, 새롭게 변화를 모색하고 있던 시대적인 분위기를 타고 관직에 나섰다. 그는 관직에 있으면서 유교로 정치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至治主義(지치주의)에 입각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였고 향촌의 상호부조를 위하여 '呂氏鄕約(여씨향약)'을 8도에 실시하였다. [표지석 뒷면] 金銓(김전). 남곤. 高荊山(고형산). 심정 등은 熙嬪洪氏(희빈홍씨)의 아버지인 홍경주를 중심으로 희빈홍씨를 통해 '나라의 인심이 모두 조광조에게 돌아갔다'고 과장하면서 그대로 둘 경우 왕권까지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走肖爲王(주초위왕)'이라는 글자를 나뭇잎에 새겨 왕이..
2016.08.05 -
深谷書院(심곡서원)과 趙光祖(조광조)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수지읍 상현리 203-2 시도유형문화재 제7호 [홍살문과 심곡서원 전경]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靜庵(정암) 趙光祖(조광조, 1482∼1519) 선생의 뜻을 기리고 제사지내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선생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사림파의 대표로 급진적인 사회개혁정치를 추진하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효종 원년(1649)에 세워 '深谷(심곡)'이라는 현판과 토지, 노비 등을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았으며, 선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교육을 담당하였다. 본관은 漢陽(한양), 자 孝直(효직), 호 靜庵(정암). 조선 개국공신 溫(온)의 5대손이며, 아버지는 감찰 元綱(원강)이다. 17세 때 魚川察訪(어천찰방)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가, 무오사화로 희천에 유배중인 金宏弼(김굉필)에게 ..
2016.08.03 -
禮安鄕校(예안향교)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04ㅡ1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 [禮安鄕校(예안향교) 앞의 보호수] 예안향교는 도산서원을 찾아가는 길에 함께 들러보면 좋다. 사시사철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도산서원과 달리 예안향교는 안동에서 도산서원 가는 길에 쉽게 들를 수 있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발길을 멈추는 이가 드물다. 예안향교는 안동 시내에서 도산서원 방면으로 약 20㎞ 떨어진 서부단지에 있으며, 이 길은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이어서 대부분의 안내판은 도산서원을 가리키고 있다. 때문에 예안향교를 알리는 팻말을 놓치기 쉽다. 향교 앞까지 자동차가 접근할 수는 있지만, 급한 경사를 곤두박질치듯 내려가야 하니 조심해야 한다. 도로 가장자리에 자동차를 주차할 공간이 넉넉하다. 주위를 잘 살피고 자동차를 세..
2016.08.01 -
北扉古宅(북비고택)과 遯齋(돈재) 李公神道碑(이공신도비)
소재지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421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4호 [凝窩宗宅(응와종택) 표지석] 성주 한개마을은 성산 이씨의 집성촌이자 한옥보존마을이다. 북비고택은 한개마을의 '터줏대감' 집이다. 한개마을의‘한개’는 ‘큰 나루’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라 한다. 옛날 낙동강 물길을 따라 이동하던 나룻배가 백천의 물길을 거슬러서 이 마을 앞까지 오르내렸으며, 당시 교통의 요충지이자 큰 나루터를 끼고 있던 한개마을은 경상도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늘 북적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백천은 작은 쪽배 하나도 떠다니기가 어려울 만큼 수량이 적어서 옛날의 나루터 풍경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북비고택은 별도의 살림채로 담장을 두르고, 대문채, 사랑채, 행랑채, 안채를 대지 안에 구성하고 있다. 대문..
2016.07.28 -
강원 척주동해비. 대한평수토찬비 및 삼척회기념비
소재지 : 강원도 삼척시 정상동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8호. [東海碑閣(동해비각) 현판] [後面(후면) 東海碑閣(동해비각) 전경] 원래는 退潮碑閣(퇴조비각) 이라는 현판이 있었으나, 1966년 이를 東海碑閣(동해비각)이라 쓴 현판으로 바꾸어 달았다고 한다. [陟州東海碑(척주동해비) 안내판 글 내용] [陟州東海碑(척주동해비)] 陟州東海碑(척주동해비)는 현종 2년(1661)에 삼척부사 許穆(허목)이 세운 것이다. 당시 삼척은 파도가 심하여 潮水(조수)가 읍내까지 올라오고 홍수 때에는 五十川(오십천)이 범람하여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이 신비한 뜻이 담긴 東海頌(동해송)을 지어 옛 전서체로 써서 汀羅津(정라진) 앞의 萬里島(만리도)에 세우니 부사와 백성들의 마음에 바다도 감동하였는지, 그 ..
201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