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11. 04:32ㆍ문화산책/고택과 문학관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 414-4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6호
[용인 이주국 장군 고택 솟을대문]
[대문앞 안내판 글 내용]
[솟을 대문]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가 보실래요.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곧장 보이는 사랑채 전경]
사랑채 앞쪽에서 바라보면 우측으로 한 칸의 청방을 두고,
가운데 두 칸은 방과 마루방으로 구성되었으며, 좌측의 맨 끝은 다락방과 부엌이다.
[사랑채에서 담은 문간채]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사랑마당과 안마당이 연속되어 있으나
원래는 사랑마당과 안마당을 구획하는 담장과 중문채가 있어서
각각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합니다.
[안채 마당과 안채 전경]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ㄱ자형으로 왼쪽부터 광,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 순이며,
안방 뒤쪽과 건넌방 앞에 각각 방이 있다.
[사랑채 밑 아궁이]
사랑채의 다락방 밑으로는 개방된 아궁이가 있으며,
아궁이 위는 다락으로 사용하였다 합니다.
[안마당과 안채 전경]
안채는 경기도 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곱은자집을 기본형으로
안방 뒤와 건넌방 앞으로 각각 한칸, 반칸을 덧달아 3량가로 가구함으로써
곱은자집의 확대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합니다.
[안채 전경]
조선 英祖(영조). 正祖(정조) 때의 武臣(무신)
본관 全州(전주). 자 君言(군언), 호 梧栢(오백).
정종의 서자인 德泉君(덕천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李滴(이적)이며,
어머니는 贊成(찬성)에 추증된 具尙禎(구상정)의 딸이다.
장군은 건장하고 뛰어난 용모와 강직한
성품으로 부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아 명망이 있었다.
문무의 차이가 심한 사회에서 문신의 횡포를
감내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아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春塘臺(춘당대)에서 활쏘기할 때의 모습이
마치 추운 겨울철에도 잎이 푸른 소나무와 측백나무 같다고 하여
正祖(정조)가 '梧栢(오백)'이라는 당호를 하사하였다.
시호는 武肅(무숙)이다.
이 생가에는 100여 년 전까지는 후손들이 살았다고 하나, 현재는 정병하 소유이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보이는 협문]
행여 사당으로 통하는 문일까 하고 올라가보았지만,
텃밭으로 통하는 문이었습니다.
[협문에서 담은 사랑채 전경]
안채의 望瓦(망와)에 씌어진 '乾隆十八年癸酉日 造作(건륭 18년 계유일 조작)'
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영조 29년(1753)에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정 당시에는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정영대가옥'이라 불렀다 합니다.
2000년에 경기도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면서
龍仁(용인) 李柱國將軍(이주국장군) 古宅(고택)으로 지정 명칭이 바뀌었다.
[노거수]
[노거수와 솟을대문]
현재의 모습은 최근에 복원한 것으로 안채와
큰사랑채, 솟을대문을 포함한 작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가옥의 입지와 채 구성, 공간 분할, 조경 수법 등에서
조선 시대 살림집의 고전적인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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