沖齋(충재) 權벌(권벌) 묘

2016. 1. 9. 08:15뿌리를 찾아서/묘역 답사

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神道碑閣(신도비각)]


추원재에서 바라본 신도비와 묘역 오르는 계단

 

 

[神道碑(신도비]]

 

신도비명은 특이하게도 두 기가 써 있다.

 

원래는 사후 20년이 되던 1568년(선조1)에 좌의정에 추증 되었을 때

사암 박순이 지었으나, 선조24년(1591)에 재차 광국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어

영의정으로 증직되자 우복 정경세가 다시 지은 때문이라 한다.

 

 

[神道碑文(신도비문)]

 

[沖齋(충재) 權벌(권벌) 묘]

 

單墳(단분)으로 정경부인 화순 최씨와 합장이다.
묘갈에는 '忠定公沖齋權先生之墓(충정공충재권선생지묘)'라 쓰여 있다. 

 

본관은 安東(안동). 자 仲虛(중허), 호 ?齋(충재). 萱亭(훤정). 松亭(송정).

할아버지는 副護軍(부호군) 琨(곤)이고, 아버지는 성균생원 증영의정 士彬(사빈)이며,

어머니는 主簿(주부) 尹塘(윤당)의 딸이다.

 

독서를 좋아하여 '自警篇(자경편)''近思錄(근사록)'

항상 품속에 지니고 다녔으며, 저서로는 '?齋文集(충재문집)'이 있다.

 

1588년 三溪書院(삼계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선조 24년(1591)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忠定(충정)이다.

 

부친인 의정공 權士彬(권사빈)과 모친인 파평 윤씨,

숙부인 교수공 권사수와 부인 봉화 금씨, 아들 권동보와  권동미 등

후손들의 묘소가 함께 자리잡은 모역다.

 

[父(부) 의정공 權士彬(권사빈) 묘]

 

[외조부 주부공 윤당 묘]

 

[묘 뒤에서 바라본 안산 전경]

 

[내려오며 신도비각쪽에서 담은 재실 추원재 전경]

 

[추원재 동쪽 누각]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지은 2층짜리

누각은 조선 시대 대표적인 목조 건축물로, 전통 제례의식 중

하나인 '望祭(망제)'를 지내는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한다.

 

망제는 객사해 제삿날을 모르는 조상이나 자손이 없는 어른 혹은

타향에 조상의 무덤이 있는 경우에 혼이나 묘가 있는 방향을 향해

제사를 드리는 의식을 뜻하는데, 보통 누각 2층에서 망제를 진행한다.

 

누각 1층의 공간은 창고로 사용하고 있고,

중앙에 조상의 묘가 있는 언덕 방향으로 작은 문이 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