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 유적지 어초은 사당과 묘소

2016. 1. 7. 06:20뿌리를 찾아서/묘역 답사

 

소재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漁樵隱(어초은) 사당]


尹孝貞(윤효정, 1476~1543) 선생의 자는 希參(희참) 호는 漁樵隱(어초은)이다.


金宗直(김종직)선생의 문하인 錦南 崔溥(금남 최부)선생과
幽齊 林遇利(유제 림우리), 城隱 柳桂隣(성은 류계린)의 가르침을 받아
학문을 다지신 성리학자로서 퇴계선생(1501년)보다는 25년
율곡선생(1536년)보다는 60년 먼저 태어나신 분이며 학문이 뛰어나
해남향인들의 마음을 크게 열어 밝게 가르치게 하여주었다.

 

 

[안내판 글 내용]

 

[漁樵隱(어초은) 사당 전경]


이곳은 입향조인 어초은공과 불천지위인 윤고산의 사당을 따로 지었다.
그리고 집안 동쪽에 사대조를 받드는 안사당이 있다.


현존 5대 봉사를 하고 있는 안사당은 순종21년(1821)에 세웠으며
그 1년 뒤인 순조 22년(1822)에는 어초은 사당을 중수하였다.

 

 

[비자나무 숲과 어초은 묘 안내팻말]

 

[漁樵隱(어초은) 묘소 가는 길]


어초은 사당 뒤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묘소가 있다기에 사당 뒷쪽 오솔길을 따라 올라갔다.

 

 

[비자나무 숲길]


오르는 길에 비자나무 숲길 팻말도 보이고...
묘소와 비자나무 숲길이 나누어지는 곳에 우측은 비자나무 숲길
비스듬히 보이는 왼편이 어초은 선생의 묘소가 있다.

 

 

[漁樵隱(어초은) 선생 묘소]


당시의 산림학자들이 명리의 그늘에서 벗어나

산촌의 삶 속에서 성리학의 실천을 추구하듯이 자신의 아호를

고기잡고 땔나무하는 숨겨진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간 인물이다.

 

 

[漁樵隱(어초은) 선생 묘소]


어초은공께서 해남주민 일부가 旱害(한해) 또는 水害(수해)로 인하여
나라에서 각 가정에 지정한 稅穀(세곡)을 납부하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있는 안타까운 실정을 보고 창고를 3회에 걸쳐 열어 대신 납부해 주어
많은 주민들이 감옥에서 풀려났다고 한다.

 

 

[漁樵隱(어초은) 선생 묘소]


유림들이 積善(적선)의 고마운 뜻을 각 고을 및 한양에까지 전하므로
해남윤씨가 더욱 빛났으며 그의 아들 代(대)에 와서 크게 家勢(가세)가 융성하여
가문의 기반이 다져진 뒤 자손들의 科官(과관)과 節義(절의)가 면면히 이어져
일찍이 湖南地方(호남지방)에 자리를 잡고 名門(명문)의 지위를 굳혀왔다.

 

 

 

묘소 앞에는 오석으로 잘 다듬어진 묘표석과

상석 망주석 그리고 키가 작은 석인상(문인상)이 있다

 

 

 

 

석인상이 쓰고 있는 모자가 독특하다.
이런 모자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漁樵隱(어초은) 선생 묘 앞에서 인증샷]

 

[비자나무 숲]


이곳 비자나무 숲에서 바람이 불때 나는 소리를 듣고
'산기슭 비자나무에 한바탕 바람이 몰아치면
우수수 봄비 내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하여 윤선도 고택의 당호를
녹우당이라고 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