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박경리 공원과 묘소

2015. 12. 16. 06:29뿌리를 찾아서/묘역 답사

 

소재지 :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박경리기념관 현판]

 

[박경리 기념관 전경]

 

박경리 기념관 앞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제일 먼저 차에서 내렸다.
마음은 바쁘고 들려볼 곳은 많고...

우선 옆쪽에 있는 안내판 부터 디카로 담기 시작했다.

 

 

[통영시 관광안내도]

 

[통영팔경 안내판]

 

[박경리공원 안내도

 

[건물 아래쪽의 출입구]

 

[안내팻말]

 

[기념관과 묘소 가는 길]

 

[기념관 앞 정원과 박경리 소설 碑(비) 전경]

 

박경리 공원과 묘소로 가는 나무계단을

오르기 전 뒤돌아 담아 본 박경리 기념관 전경

 

 

[박경리 기념관 전경]

 

기념관은 공원과 묘소를 들려본 후

내려오며 들리기로 하고 우선 공원과 묘소로 향했다.

 

 

[묘소가는 계단]


정원과 기념관 정원에 세워놓은 碑(비)를 담느라
머뭇거린 동안 벌써 앞장 선 친구가 계단 위쪽에서 내려다 보고 있네요

 

 

 

계단 양쪽으로 활짝 핀 벚꽃
바람이 없어도 후루룩 꽃비가 내린다.

 

 

 

떨어진 꽃잎을 밟으며 계단을 올랐다.

나보기가 역겨워서가 아닌 나보기가 좋아서...^^

 

 

[묘소가는 길 안내팻말]


계단을 다 올라오니 저렇게 묘소 가는 길 안내팻말이 세워져 있다.

참 반가웠습니다.

갈림길이 나오면 어디로 가야할지 망서려지거든요.

 

 

 

팻말이 가르키는 쪽으로 향했다.

 

 

 

묘소로 향하는 이 길이 참으로 마음에 쏘옥 들었습니다.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네요.

왠 뜸금없이 과수원길...ㅎㅎ

 

 

 

흰철쭉이 활짝펴서 환영을 해주네요.

 

 

[박경리 공원 안내팻말]

 

아직 멀었나? 할 즈음에....
70m 만 더 가면 박경리 공원이라 적혀 있다.

 

 

[공원 입구에 세워진 박경리 연보 안내판과 공원전경]

 

[박경리 공원 안내도]

 

[옛날의 그 집 詩碑(시비)]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 오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는 나는 홀로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아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러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눈먼 말 詩碑(시비)]]

 

[눈먼 말 / 시비 전문]

 

[음수대]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 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박경리 詩(시) '산다는 것' 중에서


음수대에 새겨진 詩(시)

 

 

[공원에서 우측 묘소 오르는 길]


근대와 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박경리 선생님
공원 곳곳에 선생의 시와 어록이 새겨진 바위들이 있어
새삼 그의 문학관과 인생철학,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묘소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 본 박경리 공원 전경

 

 

[마지막 산문 碑(비)와 쉼터(정자) 전경]

 

 

[마지막 산문 중에서 일부]

 

[음수대와 정자]


새들 지켜 주며 살고 싶어
전선에 앉아 한숨 돌리면서
물 한 모금 밀알 하나 꿈꾸는....


-박경리 詩(시) '연민' 중에서


음수대 전면에는 선생의 시 '연민'의 일부를 새겨 놓았다.

 

 

[박경리 선생 묘소]


젊었을 때 고향을 떠난 이후 48년만인 말년에
고향 통영을 찾은 선생은 미륵산 아래 양지농원에 묵으며
책을 읽고 지내다가 먼 바다를 내려다보곤, 죽으면 이곳에 묻히고 싶다 했다 한다.

 

선생의 묘소에는 그 흔한 석물도 묘비도 하나 없다.

평소의 그분의 검소함을 닮은듯.....

 

 

[묘 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그리고 얼마 뒤 선생이 세상을 떠나시자 이 말은 유언이 되었고,
양지농원 주인은 선생의 유택을 위해 선뜻 1000평의 땅을 내놓았다 한다.
박경리 선생의 평소 유언대로 묘지는 작고, 비석 하나 세우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다.


통영 한산도 앞바다가 훤히내려다 보이는 유택에 누워 무슨 생각을 하실까...

 

 

[마지막 산문 중에서 碑(비)]


올라올 때와 반대쪽 길을 택하여 내려갔습니다.

 

 

[마지막 산문 중에서 일부]

 

일 잘 하는 사내 / 박경리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내 대답... 하략..


다음 생애에서는 비록 시구로 표현하셨지만,
당신의 뜻대로 일 잘 하는 사내를 만나 평범한 아낙으로
농사지으며 근심걱정없는 그런 삶을 사셨으면 합니다.

 

 

[친필 원고 동판 碑(비) 우주 만상 속의 당신]

 

[크게 담아 본 친필 원고 동판 시비 우주 만상 속의 당신]

 

우주 만상 속의 당신 / 박경리


내 영혼이
의지할 곳 없어 인간을 떠돌고 있을 때
당신께서는
산간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뱀처럼 배를 깔고 갈밭을 헤맬 때
당신께서는
산마루 헐벗은 바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생사를 넘나드는 미친 바람 속을
질주하며 울부짖었을 때
당신께서는 여전히
풀숲 들꽃 옆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랬지요
진작에 내가 갔어야 했습니다.
당신 곁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찔레덩쿨을 헤치고
피 흐르는 맨발로라도


백발이 되어
이제 겨우 겨우 당도하니
당신은 아니 먼 곳에 계십니다.
절절이 당신을 바라보면서도
아직 한 발은 사파에 묻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내려 온 길의 붉은 황토길 전경을 담아보았습니다.

 

 

[공원 풍경]


산다는 것 / 박경리


체하면
바늘로 손톱밑 찔려 피내고
감기들면
바쁜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나면
소독하고 밴드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댈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중략...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을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 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