淳昌(순창) 歸來亭(귀래정)

2015. 7. 11. 04:25문화산책/정자와 누각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산2-1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67호

[歸來亭(귀래정) 전경]

歸來亭(귀래정)은 전라북도 순창군에 있는,
조선 세조 2년(1456) 신숙주의 아우인 신말주가 지은 정자이다.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의 문화재자료 제67호로 지정되었다.


[좀더 가까이에서 담은 歸來亭(귀래정) 전경]

정자의 이름은 중국 진나라의 陶淵明(도연명)이 관직을 사임하면서 쓴 詩(시)
'歸去來辭(귀거래사)'에서 따온 것이라 하며, 자연을 벗 삼고자 자신의 호로도 삼았다.

歸來亭(귀래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
중앙에 한칸의 방이 있는 지붕은 여덟八(팔) 모양인 팔직자붕이다.



[안내판 글 내용]

[안내도 내용]

[귀래정]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이에 불만을 품고 벼슬을 버리고 순창으로 낙향하여
자신의 호를 딴 이 정자를 세우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뜻이 통하는 노인 열명과 '십노계'를 결성하고
歸來亭(귀래정)에 올라 자연을 벗 삼아 세월을 보냈다 한다.

[귀래정 표석비]

[뒤쪽에서 담은 歸來亭(귀래정)]

그 후 다시 중앙 정계로 진출할 때까지
이 정자에서 시를 짓고 자연을 벗삼으며 지냈다고 한다.
정자에는 서거정이 지은 귀래정기와 강희맹의 시를 적은 편액이 걸려 있다.

[최근에 세운 강희맹, 서거정, 김인후의 시문을 새긴 비석]

[서거정의 歸來亭記(귀래정기)]

왼쪽 碑(비)에는 서거정이 쓴 歸來亭記(귀래정기)를
한글로 풀이해서 비문에 새겨놓았습니다.

신말주가 순창에 귀래정을 짓게 된 이유와 그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歸來亭(귀래정)이라는 이름을 왜 붙였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서거정은 신말주와 동시대에 살았던 문신이자 학자로서,
당대의 문사들과 자주 교유하였다 합니다.

[강희맹의 歸來亭(귀래정)과 김인후의 詠歸來亭(영귀래정)]

오른쪽에는 강희맹과 김인후가 쓴 시문이 새겨져 있다.
유유자적하는 선비 정신이 잘 드러나는 글이라 합니다.

[우측에서 옆에서 담은 歸來亭(귀래정)]

歸來亭(귀래정)에는 톡특하게도 정자의 이름이
정면과 옆 면에 걸려 있는데... 정면에서 우측 옆 건물에는
크고 작은 歸來亭(귀래정) 현판이 두개가 나란히 걸려있었다.
위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시면 아실거에요.

[歸來亭(귀래정)] 큰 현판]

[歸來亭(귀래정)] 작은 현판]

[歸來亭(귀래정) 처마안쪽에 걸린 작은 현판]

원래의 귀래정은 세조 2년(1457) 申末舟(신말주)에 의해 세워다 하는데,
현재의 건 물은 1974년에 다시 세운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건물의 관리는 高麗申氏宗中(고려신씨종중)에서 하고 있다 합니다.


 

[우측에서 담은 歸來亭(귀래정)]

申末舟(신말주)는 세종 11년(1429)
工曹參判(공조참판) 申檣(신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字(자)는 子楫(자즙)이라 하고 號(호)는 歸來亭(귀래정)이다.


[閒雲野鶴(한운야학) 편액]

위에 보이는 편액의 글씨는
신말주 선생의 16대 방손(방계 후손)인
서예가 인전 신덕선 선생이 쓰신 휘호라 하며,
귀래정을 지은 신말주의 마음을 잘 표현한 편액이라 합니다.

한가로운 구름 아래 노니는 들의 학이란 뜻으로,
벼슬과 어지러운 세상을 버리고 강호에 묻혀 사는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고....
한가로운 생활로 유유자적하는 경지를 뜻한다 합니다.

[정면에 걸려 있는 歸來亭(귀래정) 현판]

정면에 걸려 있는 歸來亭(귀래정) 현판은
孤山(고산) 尹善道(윤선도)의 글씨라 합니다.


[좌측에서 담은 歸來亭(귀래정)]

신말주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특출하고 학문을 즐겨
1451년 司馬試(사마시)에 합격하고, 1454년 增廣文科(증광문과)에
급제, 영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수양대군(세조)이 조카 단종(1452~1455 재위)을 내치고
제7대 왕위에 오르자 벼슬을 놓고 부인 설씨의 고향인 순창으로 낙향 했다.

[정면에서 좌측에서 담은 歸來亭(귀래정)]

그는 이곳에서 閑雲野鶴(한운야학)을 벗삼아 지내다가
다시 사관원, 우헌납 등 여러 관직을 지냈고 세조 13년에
벼슬을 사양하고 다시 낙향 했다.

[歸來亭(귀래정) 안 편액]

귀재정으로 오르면 강희맹, 서거정, 김인후 등의
시문과 함께 귀래정중수기 편액 등을 볼 수 있습니다.

[歸來亭(귀래정) 중앙 방]

[歸來亭(귀래정) 안 편액 2]

[좌측 정면에서 담은 歸來亭(귀래정) 전경]

그러나 성종 7년에 전주부윤에 임명되어
순창을 떠났다가 70세에 돌아와 말년을 보냈다.

[귀래정 주변 감나무]

歸來亭(귀래정) 아래 쪽에는
薛氏婦人(설씨부인). 申景濬先生(신경준선생) 遺址(유지)와
南山祠(남산사)에는 귀래정 공의 부인 설씨의 '권선문첩'
귀래정 공의 후손인 여암 신경준의 고지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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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까치밥]

까치밥으로 남겨 두었을까?
아니면, 손이 부족하여 따지 못하고 그냥 두었는지 모르지만,
푹 익은 가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담 위 쪽에서 담은 설씨부인. 신경준선생 유지]

[위쪽 담 너머에서 담은 남애정사. 자혜당. 남산사 전경]

[유장각 담 옆 귀래정으로 이어주는 돌계단]

申末舟(신말주)선생의 詩(시) 한 편으로 소개를 마칠까 합니다.

바람이 돌아가는 기러기 몰아 平沙(평사)에 떨어뜨리니
물빛과 파도의 광채가 황혼에 더 농후해지네
만약에 용을 잠재우고 이 경치를 모사하게 한다면
어부의 피리소리를 어찌한단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