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陟(삼척) 竹西樓(죽서루)

2015. 8. 18. 05:48문화산책/정자와 누각

 

소재지 :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 9-3

보물 제213호

 

[竹西樓(죽서루) 삼문과 안내판 전경]

 

[죽서루 관람 안내판 글 내용]

 

[외출 영화촬영지 안내팻말]

 

이곳에서 영화 외출을 촬영하였나봅니다.

전 영화를 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좋은 영화였을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竹西樓(죽서루) 삼문]

 

죽서루로 입장해 보실까요.^^

죽서루의 입구 옆에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이 있어 문화해설을 필요로 하면 이곳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竹西樓(죽서루) 전경]

 

이 누각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려 명종 때의 문인

金克己(김극기)가 쓴 죽서루 詩(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12세기 후반에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태종3년(1403) 당시 삼척 부사 金孝孫(김효손)이 고쳐지었다.

 

우리가 가는 날 죽서루 앞 화단에 핀 모란을 화폭에 옮겨그리는 분이 계셨다.
참 아름다운 한폭의그림같은 풍경 난 그분까지 디카에 담아왔습니다.

 

 

[좀더 가까이 담아 본 竹西樓(죽서루) 전경]

 

절벽 위 자연 암반을 기초로 하여 건축되어 있고, 樓(누) 아래의 17개 기둥 중 아홉 개는

자연 암반을 기초로, 나머지 여덟 개의 기둥은 돌로 만든 기초 위에 세웠으므로 17개의 기둥 길이가 각각 다르다

 

상층은 20개의 기둥으로 7칸을 형성하고 있으며,
자연주의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진수로 關東第一樓(관동제일루)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로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지만 원래는 5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래 건물인 가운데의 5칸 내부는 기둥이 없는 통간이고 후에 증축된 것으로 보이는 양측 칸의 기둥 배열은 원래의 양식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다르게 배치되어 있다

마루는 우물마루(넓은 널을 짧게 잘라 끼워놓은 마루)이며 천장은 연등 천장인데 좌측 뒷간(건물의 덧달아 낸 칸, 물림칸) 일부는 우물천장으로 하였다

 

 

[竹西樓(죽서루) 아랫쪽 화단에 활짝 핀 모란]

 

牧丹(모란) 미나리아재비과 낙엽활엽관목으로 높이 약 2m 원산지는 중국으로 전국에 분포 5~6월에

백색이나 붉은 자줏빛의 큰 꽃이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그윽한 향기가 봄의 향취를 높게 하므로 한국식 정원에 알맞은 관상수라 한다.


잎 또한 특이하여 꽃이 없는 시기에 감상 가치가 있으며, 햇볕이 드는 곳에 잘 자라며 홑꽃 또는 겹꽃으로 피는

다양한 색상의 꽃이 감상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정원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도록 단식, 군식으로 화단에 심는다.

활짝 핀 모란의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예전 흔들다리가 있었던 자리]

 

[竹西樓(죽서루) 암반]

 

[아랫쪽에서 담은 竹西樓(죽서루) 전경]

 

竹西樓(죽서루)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유래가 있다 합니다.

그 하나는 죽서루 동쪽에 대나무밭이 있었는데, 그 대밭 속에 죽장사라는 절이 있었기에

죽장사 서편에 있는 누각이라 하여 竹西樓(죽서루)라 부르게 되었다 하며, 또 다른 유래는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 서편에 있는 樓(누)라고해서 竹西樓(죽서루)라 했다 하지만, 신빙성은 적다 합니다.

 

 

[竹西樓(죽서루) 현판]

 

 

[竹西樓(죽서루)]

 

竹西樓(죽서루)는 절벽 위의 자연 암반을 변형 시키지 않고 자연모습 그대로 기초로 하여

건축되어 있어 죽서루에 사용된 17개의 기둥 길이가 모두 각각 다르다 합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살리면서 지은 우리 옛 선조님들의 지혜로움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海仙遊戱之所(해선유희지소) 현판]

 

현판 글씨는 헌종 3년(1837) 李奎憲(이규헌)의 필체라 합니다.

 

 

[第一溪亭(제일계정) 현판]

 

현판 글씨는 현종 3년(1662) 許穆(허목)의 필체라 합니다.

 

 

[누각에 걸린 詩(시) 편액들]

 

현재 누정 내에는 삼척부사 허목이 지은 '竹西樓記(죽서루기)'와 당성 홍백련이 지은

'죽서루 중수기' 등 기문과 일중 김충현이 쓴 율곡 이이의 '竹西樓次韻(죽서루차운)''정조의 어제시'의

시판 등 모두 26개의 현판이 게시되어 있으며, 이 밖에 숙종, 정조, 율곡 이이 선생 등 많은 명사들의 詩(시) 편액이 걸려 있다.

 

죽서루에는 당대 쟁쟁한 많은 문인 학자들이 시를 남겼고 그 詩(시)가

오늘날 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일부는 죽서루에 현판과 벽면에 걸려 있습니다.

그 중의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竹西樓 / 李球]

 

삼척 죽서루 게판에 세칭 關東二君子詩(관동이군자시)로 유명한 시 두 편이 있으니 
당시 동료인 中書(중서) 沈東老(심동노)와 司諫(사간) 崔卜河(최복하) 두 사람에게 증시한 시문이다.


삼척의 관루는 죽서루이고
누중의 가객은 심중서로다
지금과 같이 백발임에도
시와 술에 의탁하여
한가한 나를 위해 자리를 베풀었네

 

 

봉지에서 일보는 사간원 그대는

한가로이 신선이 노는 땟목배에 누었는데

일찍이 창랑에서 들려오는 어부가의 뜻을 알겠노라.
말하노니 지금 시급한 것은 임금을 도와

바른 정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본관은 羽溪(우계), 초휘는 沃(옥), 公(공)은 일찍이 고려 충렬왕 8년 1283년 元(원) 나라에 들어가
약관 18세에 進士(진사)에 급제하여 還國(환국)후 고려조정에 重用(중용)되어 禮賓卿(예빈경)에 이르렀고,
當代(당대)의 文名(문명)을 날렸으며  특히 詩文(시문)에 능하였으며 三陟竹西樓(삼척죽서루)의 시문과 더불어 오늘에까지 명성이 전래되고 있다.

 

 

[竹西樓(죽서루) 次韻(차운) / 栗谷(율곡) 李珥(이이)]

누가 하늘 도와 이 아름다운 누각을 세웠는가
그 지나온 세월 얼마인지 알 수가 없구나

들판 저 멀리 산봉우리에는 검푸른 빛 서려있고
모래사장 부근에는 차가운 물 고여있네

시인은 본래 남 모르는 한이 많다지만
깨끗한 이 곳에서 어찌 나그네의 근심을 일으켜야만 하리요

온갖 인연 모두 떨쳐버리고 긴 낚시대 들고와
푸른 절벽 서쪽 물가에서 졸고 있는 갈매기와 놀아보리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1536~1584). 자는 叔獻(숙헌). 호는 栗谷(율곡) 石潭(석담) 시호 文成(문성)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호조, 이조, 병조 판서, 우찬성을 지냈다.

 

사헌부 감찰을 지낸 元秀(원수)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이다.
저서로는 '율곡전서', '성학집요', '경연일기'가 있다.

 

 

[竹西樓(죽서루) / 松江(송강 鄭澈(정철)]

관동의 신선 경계에 있는 삼척의 누각
빈 난간 높이 걸려 있어 여름 또한 가을 같다.

하늘위의 옥황상제 궁전이 북쪽 왼편에 이웃해 있고
꿈속에 은하수 서쪽으로 흘러감이 들린다.

성긴 주렴 걷고자 하나 이슬이 축축하고
한마리 새 날지 않으니 강의 모습 시름겹다.

鄭澈(정철 : 1536~1593)은 조선 선조(14대) 때의 명신이면서 문인으로서 자는 계함, 호는 松江(송강)이며, 시호는 문청이다.

 

율곡 이이와 동갑나기인 정철은 돈녕부 판관을 지낸 정유침의 아들로서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당대의 명유들이었던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면앙정 송순 등에게서 글을 배웠으며, 우리나라 시가사상

고산 윤선도와 쌍벽을 이루는 가사문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竹西樓(죽서루)에서 내려다 본 전경]

 

죽서루 절벽 아래에는 삼척의 젓줄인 오십천이 흐르고
죽서루 앞쪽의 절경이 가히 관동 제일이라 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竹西樓에서 내려다 본 오십천]

죽서루에서는 멀리 태백 준령이 보이고 가까이는 近山(근산), 葛夜山(갈야산), 鳳凰山(봉황산)이 솟아 있다.

오십 굽이를 휘몰아쳐 흐른다는 오십천 절벽 위에 장방형으로 자리잡은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유일한 樓(누) 라한다.

 

죽서루의 정면에서 보든 뒤에서 보든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낼 만큼 절경입니다.

 

 

[오십천따라 내려다 본 풍경]

 

關東八景(관동팔경)이란

간성 淸澗亭(청간정), 강릉 鏡浦臺(경포대), 고성 三日浦(삼일포), 삼척 竹西樓(죽서루),

양양 洛山寺(낙산사), 울진 望洋亭(망양정), 통천 叢石亭(총석정), 평해 越松亭(월송정)

 

 

[주변 암반]

 

[죽서루 용문바위와 안내판 전경]

 

죽서루 경내에 있는 용문바위는 신라 제30대 文武王(문무왕)이 死後(사후)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어느날 삼척의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죽서루 벼랑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용문바위]


호국용이 오십천으로 뛰어들 때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는데 그것이 용문바위 라고 합니다
그후 용문바위는 아름다움과 장수, 다복의 기원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용문을 드나들며 소원을 빌고 있다 합니다.

 

 

[주변 암반 2]

 

[주변 암반 3]

 

[뒤쪽에서 담은 송강 정철 가사의 터 표석]

문화부는 1991년 2월을 우리나라 가사문학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송강 정철의 달로 정하고

기념 표석을 두개 세웠는데, 하나는 '관동별곡'에 나오는 관동팔경의 하나인 삼척의 죽서루 경내이고,
다른 하나는 '성산벽곡'의 무대인 전남 담양의 석영정 부근이다.

 

 

[정면에서 담은 송강 정철의 가사의 터 와 안내판 전경]

 

높이 3m의 8각 대리석으로 기단의 둘레가 2.5m인 '송강 정철 가사의 터' 표석은

종전의 일반적인 詩碑(시비)와는 달리 팔각형의 장대표석과 8각형의 기단으로 이루어졌는데

기단 8각의 각 면마다 송강의 대표작과 친필, 手決(수결), 세움말, 가사창작의 배경등을 담아
송강의 생애와 문학에 관한 미니박물관 역활을 하도록 만들었다.

 

 

[송강 정철 가사의 터 안내판 글 내용]

 

[문화원 앞 뜰]

 

[삼척 문화원]

 

[안쪽에서 담은 죽서루 협문]

 

[죽서루 협문]

 

관람을 마치고 쪽문으로 나오다가...
먼저 나온 옆지기 디카에 담겨버렸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