臨津閣 國民觀光地(임진각 국민관광지)

2015. 11. 12. 06:30추천합니다/관광지와 휴게실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1253-3

 

 

[平和(평화)의 種閣(종각) 전경]

 

경기도 파주시에 소재한 관광지며,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가슴아픈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는 6.25전쟁. 그 전쟁의 아픔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곳이 판문점이며, 판문점으로들어가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최북단 장소가 임진각이다.

 

임진강에서 임진각이란 이름을 따 왔다 한다.
1972년 임진각이 세워지면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이 곳에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관한 각종 자료와
한국전쟁에 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통일의 횃불, 철도중단점, 경기도북한관, 망향의 노래비,
망배단등이 있으며, 임진강역에서 걸어서 5분 이내 거리에 경의선과 
근처엔 돌아올 수 없는 다리가 있다.

 

 

[망향의 노래 비]

 

자유로에 접어들어 달리다 보면, 화석정을 지나

오두산전망대를 지나 임진각에 다달을 수 있다.

자유로를 달리며 내내 따라다니는 강변의 철책이 슬프다.


이래저래 임진각은 우리역사의

아픈 현장이자, 안보관광의 최고 장소이기도 하다.
휴전선에서 불과 7km 못 미친 거리라 한다.

 

광장에는 설운도의 잃어버린 삼십년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었다.
이산가족 찾기 할 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했던
잃어버린 30년,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 지금도 귓가에 들려오는것 같다.

 

 

[노래비에 새겨진 잃어버린 삼십년 노랫말]

 

[望鄕(망향) 시비]


望鄕(망향)

 

오십년 끊긴 안부가
바람으로 서 있다.
목이 멘 이산의 아픔
불러보는 사람아
송악산 솔밭 사이로
고향 하늘 보인다.

 

망향의 아픈 구비
얼마를 울었을까
핏금친 산하에서
歸鄕(귀향)을 꿈꾸나니
그 언제 사랑하는 사람과
고향 땅을 밟을까

 

반 백년 침묵 속에
한 맺힌 임진강아
神(신)의 손도 비켜간
傷痕(상흔)을 찍어내어
피묻은 謀反(모반)의 땅에
둥근 해를 띄워라


詩(시) 印少里(인소리)
글씨 효산 이필우

 

 

[나의 조국 시비]

 

[자유의 다리에 얽힌 사연을 들여다보고..]


자유에 다리에 대한 사연들이 적혀 있는것을 쳐다보고
읽으며 마음이 아파왔다.


임진각에서 가장 유명한 '자유의 다리'다.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교각위에 철 난간이 있고
바닥을 나무로 깔아놓은 83미터의 허름한 다리지만,
1953년 건설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본래는 독개다리라 불렀는데, 휴전협정 이후 북한에 잡혀있던
1만2천7백여명의 포로들이 이 다리를 건너 자유를 찾았다하여
'자유의 다리'라 부르게 되었다.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함께
6, 25전쟁의 비극을 상징하는 이 다리는 7, 4공동성명 이후
남북회담 대표들이 지나다닌 길목이기도 하다.


 

[안내판 글 내용]

 

[자유의 다리]

 

1953년, 12,000명에 달하는 포로들이 이 다리를 건널 때
얼마나 가슴 벅차고 기뻤으며, 희망과 행복에 부풀어 있었을까

지금은 분단 현실을 여실히 증명하는 하나의 상징이며,
풀리지 않은 매듭이 되어 우리들 가슴 한 구석을 아리게 하고 있다.

자유의 다리 서편은 가시 철조망으로 굳게 닫혀있다.


실향민과 이산가족들의 끝간대 없는 그리움을 가시철조망으로 막아두었다.
고향과 가족들을 그리는 마음은 알록달록 리본으로 뒤덮어 놓았다.

 

이곳에 와서 헝겊 조각하나 묶어 놓는다고 통일이 되는 것도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이곳까지 오게 만드는 힘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자유의 다리는 임의로 가설한 교량이므로 건축적으로 뛰어난

점은 없으나 '자유로의 귀환'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의 대표적인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리본들]

 

자유의 다리 끝에는 더 이상 갈 수 없도록 철조망이 쳐져 있고,
철조망엔 빼곡히 노랗고 빨간 여러가지 천조각들이 달려있다.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이들이 통일을 염원하며,
북에 있는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천조각들이라 하지만,
하나하나의 천에는 애타는 사연이 간절한 염원이 담기어 있을 것이다.

 

또한 철조망 너머에는 도라산역까지 연결되어 있는
경의선의 새로 만든 교각이 맞닿아 있다.

 

 

[통일 연못]

 

자유의 다리 아래에는 한반도 모형을 한 통일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민간인이 자유롭게 갈 수 있는 최북단에서 남북 이산의 한을 달래고
통일을 염원하는 장소로 제공하고자 조성하였으며 연못의 규모는
가로 12m, 세로 36m, 바닥면적이 116평으로서 한반도 모양의 단일연못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철조망과 끊어진 다리 전경]

 

임진각 관광지는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민족대립으로 인한 슬픔이 아로새겨져 있는 곳이다.

 

임진강지구 전적비, 미국군참전비등 각종 전적비와
1983년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소에 참배 중 북괴의 폭탄테러로
사망한 17명의 외교사절을 추모하는 위령탑.

1987년 김포국제공항 폭발사고 희생자 추모비가 있으며,
남북 분단 전 한반도 북쪽 끝 신의주까지 달리던 기차가
이곳에 멈추어 전시되고 있다.

 

이 곳에는 망배단이 있는데 망배단은 휴전선 북쪽에 고향을 가진
실향민들이 매년 설날과 추석때나 가족이 보고싶을 때에
고향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이곳에서 이북에 계신
부모, 조부모에게 배례하는 장소이다.

 

소식이 끊겨 생사도 불명확한 가족을 애타게 찾는
이산가족의 아픔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곳은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며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안보관광지로 매년 250만명의 내, 외국인이 방문하고 있다.

 

 

[끊어진 다리]

 

이곳의 임진철교는 2개의 다리가 나란히 있었으나 전쟁 중 하나는

파괴되어 철교의 교각만 남아 전쟁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끊어진 다리 2]

 

[평화의 돌(The Stones of Peace Wall)]

 

전세계 전쟁터의 한과 슬픔을 담은 돌들이다.
세계 64개국 86개의 전쟁터에서 직접 가져온 돌들을 모아
2000년 1월 1일 이 조형물을 만들었다 한다.

 

 

[平和(평화)의 種閣(종각)]


임진각 높은 곳에 북녘땅을 굽어보며
새 천년의 우렁찬 소리를 토해 냈던 '평화의 종'은 인류평화와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900만 경기도민의 의지를 모아 건립되었다.


1999년 21세기의 시작을 기념해 조성된 종으로
21세기를 상징하며 무게 21톤  높이 3.4m, 지름 2.2m 이다.


종각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사모지붕의 목조구조로서
면적은 21평, 높이는 21미터 종의 무게도 21톤 타종을 할 때도
21번을 친다고 하는 평화의 종이다.


평화의 종 아래는 철조망이 쳐져 있어 더 이상의 접근을 막는다.

 

 

[끝없이 이어진 철조망]


이렇게 남북은 갈라지고...

오고갈 수 없는 마음은 애닯기만 하다.

 

나의 조국 / 草阿(초아) 박태선

 

아픔이 너무 많은 나의 조국
떨어져 산 세월만큼이나
한도 눈물도 아픔도 많은 민족


하루아침 남과 북으로
부모님과 부부와 자식과 형제와
연인과 친지와 생이별하였노라


넌 북녘에 난 이남에
우리 언제 만나 회포를 풀어볼까
꿈길조차 막혔는지 꿈에서도 못 만나네


피로 물든 이 강산
아직도 덜 씻긴 핏빛 산하
봄이면 빨갛게 산천을 물들이는 진달래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이면
망배단 아래 제주 모셔놓고
피눈물 뿌리건만 아직도 멀고 먼 내 고향


사연 없는 사람들의
가슴까지 후벼 파며
끝내 눈물짓게 하는 모습


통일되면 맨 먼저 달려가리라
아직도 임진강가 맴도는 원혼들이여
하늘이여 아직도 외면하시려는가.

 

 

[平和(평화)의 種(종)]


이산의 한을 풀지도 못하시고 돌아가신 어머님
육신의 끈을 푸셨으니 지금은 마음놓고 북녘땅 만주땅 오고갈 수 있으려는지
어머님 생각으로 기여이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습니다.

 

 

[平和(평화)의 種閣(종각) 오르는 계단위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새 주인을 모시고 다 함께 뜻과 마음을 마춰
경제도 살리고, 對內外(대내외)에 위세를 떨쳐나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