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팔경 舍人巖(사인암)

2015. 11. 10. 06:25추천합니다/관광지와 휴게실

 

소재지 :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
명승 제47호

 

 

[사인암 안내 팻말]

 

 

옛사람들은 '무슨무슨 팔경'을 이름지어 부르길 좋아하였지만,
단양팔경은 관동팔경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확고히 인정받은 경승지이다.

 

 

 

소백산맥 줄기와 남한강 및 그 지류가 엮어내는
단양의 풍광은 산과 물이 어울려 보기 드물게 빼어난 곳이다.

 

 

 

사인암 앞쪽에 있는 암석
이곳이 사인암인가 하였더니... 아니라 하네요.

 

 

 

무슨 무슨 암이란 이름을 알려주었는데....
앞 두자는 까먹어버렸어요...ㅠ.ㅠ

 

 

 

다리를 건너 더 내려가야 만날 수 있는

舍人巖(사인암) 다시 걸음을 재촉하였다.

 

 

[舍人巖(사인암)]

 

舍人巖(사인암)은 단양팔경 중에서도 손꼽히는 경승지이다.
깎아지른 암벽이 하늘에서 내려뜨린 병풍처럼 서 있다.

 

 

 

치솟은 바위벽은 가로세로로 금이 가서
요모조모 쌓고 끼운 듯, 절경 중 절경이라 할 수 있다.

 

 

 

단양의 경승으로는 다섯 바위가 있다합니다.
上仙岩(상선암), 中仙岩(중선암), 下仙岩(하선암), 雲岩(운암)
그리고 舍人巖(사인암)을 이른 것이라 합니다.

 

현재의 단양8경은 여기서 운암을
제외하고 석문과 옥순봉이 추가된 것이라 합니다.

 

 

 

舍人巖(사인암)은 남조천(일명 운계천)변에 병풍처럼
넓은 바위가 직벽을 이루며 위엄을 자랑하고 있는 곳으로
추사 김정희가 이곳을 두고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 그림과 같다고
찬양했을 정도로 그 경관이 특이하고 아름답다.

 

옛날부터 수많은 詩人墨客(시인묵객)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아왔다.

 

 

 

고려시대 경사와 역학에 능통했던 역동 우탁 선생이
정4품 벼슬인 舍人(사인) 재직 시 이곳에서 머물렀다는 사연이 있어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였던 임재광이 사인암이라 명명했다고 전하며,
암벽에는 우탁의 글이 남아 전한다.

 

 

조선 시대 천재 화가 '단원 김홍도'가 특이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정조에게 보여주고자 '병진년 화첩'에 담았다.

 

 

[단원 김홍도 그림]

 

추사 김정희는 舍人巖(사인암)을 두고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의 그림과 같다'며 찬양하였다 한다.

 

 

 

고려말 정주학의 대가였던 우탁은 '舍人(사인)'이라는
벼슬을 할 때 이곳에 자주 들러 초막을 짓고 기거했는데
그가 죽은 뒤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 임재광이 우탁을 기리기 위해
바위 이름을 '舍人岩(사인암)'이라 지었다고 한다.

 

 

 

기암절벽 위에 서 있는 노송이 멋스러우며 우탁 선생이 직접 새긴
'뛰어난 것은 무리에 비유할 것이 없으며 확실하게 빼지 못한다.
혼자서도 두려운 것이 없으며 세상에 은둔해도 근심함이 없다'

뜻의 글씨가 암벽에 남아 있다 합니다.

 

 

 

암벽에는 아직도 우탁 선생이 지은
'江行(강행)'
이란 시귀도 남아있다 합니다.

 

'이슬 머금은 단풍잎 붉게 땅위에 떨어지고,
석담엔 바람이 일어 푸른 하늘을 흔드네. 

숲 사이엔 숨겨진 채 환한 외딴 마을이 아물거리고,
구름 밖엔 우뚝 솟은 산봉우리 이어지네.'

라며 사인암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舍人巖(사인암) 앞쪽으로는 맑은 물이
폭넓게 흘러 피서철이면 야영객으로 붐빈다 합니다.

 

 

[인증샷]

 

 

사인암 앞 냇가 평평한 바위에는
암각 바둑판과 장기판이 음각돼 있는데
오랜 세월 비바람에 마모되었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웹에서 모셔온 사인암 바둑판]

 

사인암의 돌 바둑판(石局)은 사인암 전설과 함께
우탁이 만들었다고 전하지만 확실치 않으며 일설에 의하면
조선조 중기에 어떤 풍류객이 새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바둑판을 누군가가 가져가기위해

교묘하게 짤랐지만, 너무 무거워서 옮겨가지 못하였다 하네요.

 

 

[웹에서 모셔온 사인암 장기판]

 

아마도 누군가가 이곳의 풍광에 반해 바둑과 장기를 두며
신선놀음을 하기 위해 새겨둔거나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