昇州靖獻齋(승주정헌재)

2015. 10. 29. 06:23문화산책/고택과 문학관

 

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주암리 217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31호

 

 

[玉川趙氏副正公世阡(옥천조씨부정공세천) 碑(비)]

 

주암마을로 가는 도로변에 세워놓은
玉川趙氏副正公世阡(옥천조씨부정공세천) 碑(비)

 

 

[昇州靖獻齋(승주정헌재)]

 

한참을 헤메야 했다.
이곳을 찾기 위해서... 갈림길 쪽에 작은 안내팻말이라도
세워두었으면 좋았을텐데..

 

몇번을 오락가락 올랐다 내렸다.
주변 사람들에게 여쭈어 겨우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
마침 이곳을 정리하고 보호하기위해
문화재청에서 오신 분들이 계셔서...
조심스럽게 허락을 얻어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문이 닫혀 있어서 재실의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았다 하네요.
행여 방해가 될까봐 조심스레 피해서 담았지만,
간혹 그분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있네요.^^

 

[昇州靖獻齋(승주정헌재) 전경]

 

주암리는 옥천 조씨가 500년 이상 대대로 살아온 터로,
이 齋室(재실)은 맨 처음 이 곳에 자리잡은 문중의 입향시조인
趙瑜(조유)를 제사 지내기 위해 문중에서 세운 건물이다.

 

 

[담 밖에서 담은 住崗齋(주강재)]

 

기록에 의하면 건립 당시에는 담장 내에 재실과 서당, 행랑채를
둔 것으로 되어있어 서당과 제향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昇州靖獻齋(승주정헌재) 삼문 전경]

 

[안내석 글 내용]

 

[안내석 영문 글 내용]

 

[정헌재 삼문 옆 담장쪽에 세워놓은 비석군]

 

순천시 주암리는 전남지역 옥천 조씨의
낙남 입향지로 현재까지 500년 이상 세거해 온 탯자리이다.

 

 

[靖獻齋(정헌재) 좌측 건물]

 

조유는 고려 말기 진사에 급제하여 육정농부정까지
지낸 인물로, 그의 부인 담양국씨와 손자 첨지중추부사 趙智山(조지산)
이하 5대의 신주도 모시고 있다.

 

宋在晟(송재성)의 기문이 남아 있다.

 

 

[靖獻齋(정헌재) 전경]

 

靖獻齋(정헌재) 좌측 건물을 담고 정헌재로 오르는
제 모습을 뒤에 오던 짝꿍의 디카에 잡혀 버렸네요. ㅎㅎ

 

 

[靖獻齋(정헌재) 현판]

 

[昇州靖獻齋(승주정헌재) 전경]

 

최초의 건립 시기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현재와 같은 규모로 건립한 것을 볼 때, 주변 여건과
기록에 따라 정조 5년(1781) 趙夢臣(정몽신)이 중건하고,
순조 12년(1812)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靖獻齋(정헌재) 좌측에서 담은 전경]

 

창건 당시에는 담장 안에 재실을 배치하고
서편에 서당을, 동편에 행랑을 두었다고 하는데,
이로써 정헌재가 서당과 묘각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靖獻齋(정헌재) 좌측에서 담은 솟을삼문 전경]

 

지금은 대지의 상단 동쪽에 신주를 모신 사당을,
하단 북쪽에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을,
앞면에 문간채를 두어 담장을 둘렀다.

 

 

[담 밖에서 담은 靖獻齋(정헌재) 옆 전경]

 

재실은 一자형 기와집 형태로, 옆면에서 보아
사람 人(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을 올리고 있다.

 

중앙에는 대청을 두고 한쪽 측면에
제사를 지내러 온 사람들을 위한 온돌방을 두었다.

 

 

[靖獻齋(정현재) 담장]

 

정현재 옆쪽 담으로 난 작은 일각문이 있기에
어디로 통하나 나와 보았더니, 이 길을 따라 오르면
묘역으로 오를수 있는 길이 보였다.

 

묘 소개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오늘은 昇州靖獻齋(승주정헌재)만 소개하겠습니다.

 

 

[묘역 답사를 마치고 내려오며 담은 靖獻齋(정헌재) 전경]

 

마침 점심때가 되어 식사를 하려 가셨는지
사람들이 보이지 않기에 말끔히 정리된 靖獻齋(정헌재)를
다시 담아 보았습니다.

 

이 곳에는 정헌재 이외에도 인접한 죽림리의
謙川書院(겸천서원)과 相好亭(상호정), 永모齋(영모재), 旌閭閣(정려각)
그리고 조순탁가옥(지방민속자료 30호)이 함께 잘 보존되어 있다 합니다.

 

 

[담너머로 다시 담아 본 住崗齋(주강재)]

 

여쭈어보면 허락을 하실것도 같은데,
수고하시는 분들께 폐가 된다며... 짝꿍이 못하게 하네요.
아쉽지만, 그냥 담 밖에서 住崗齋(주강재)를 담고는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