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날의 오해와 화해

2015. 10. 9. 06:20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큰 며늘아기가 가끔 아주 가끔 오게되는 시댁에 오면서...
언제부터인가 베게커버를 가져오는 것 같다.

두어해 전 자고난 이불을 개켜주다가 본 낯선 베게커버.
서늘한 기운이 가슴을 훝고 지나가는것 같이 서운함을 느꼈다.

말을 할까? 말까? 망서리다 그냥 보내고...
다시 우연하게 보게된 베게커버...
참 야릇한 기분이며, 많이 서운하며 속이 상했다.

아이들이 온다하면, 안 그래도 이불과 요를 살펴보고
베게커버도 깨끗한것으로 챙기곤 했는데...우찌 이런일이??

시댁의 베게는 더러워서 베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밖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럼 도대체 난 뭐야?? 베게도 하나 깨끗하게 하지 못하는 시엄시!!
그럭저럭 잘도 넘어갔는데, 지난 설날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지요. 

"얘야 저 베게커버는 뭐니!?"
좋게 각이 서지 않게 말한다고 조심은 했지만...
말에 날이 섰겠지요. 좋게 나올리 만무하지요.
가져온 베게커버도 내 눈엔 그리 깨끗해 보이지도 않았다.

"네가 가져온 베게커버 우리집 베게보다 더 더럽네!"
"어머니 그게 아니구요." 하고 놀라며 사연을 풀어놓았다.

그 사연의 내용인즉, 피부가 예민해서 오랫동안 장농안에 둔
이불이나 베게를 덮고 자거나 베고자면 눈이 짓무르며,
아르레기반응이 나타난다고 한다.
특히 베게는 더....그러니, 무거운 이불은 가져오지 못하더라도
베게커버은 꼭 챙겨서 가져와서 바꾸어 베고 잤다한다.

"어머님 절대 베게가 더러워서 못베고 자서 그런건 아니에요."
안그래도 어머님 보시면 혹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려했는데...
하고 말끝을 흐린다. 

후유...다행이다.
알고 나니 이렇게 개운하고 좋은걸..
오랫동안 속에만 묻어놓고 은근히 속상해했다.
그리곤 며늘아기가 더 보태어 하는 말.

"어머님 제 베게만큼은 제가 오기전 햇볕에 좀 널어주셔요." 한다.
"알았다. 그렇게 할께. 진작 얘기하지 그랬니"
"전 했는줄 알았어요."
"알았다. 괜히 오해했구나 미안해 그런줄도 모르고.."


우리 며늘아기 참 특별하기도 하지요.
친정에가도 베게커버은 가져간대요. 그러니 뭔 말을 더 하겠어요. ㅎㅎㅎ

처음엔 채깍채깍 돌아가는 시계소리도 귀에 거슬려
장롱속 덮지 않는 이불속에 깊숙이 숨겨놓고 자곤 그냥가서...
가고 난 후에 없어진 시계를 찾느라 삼만리했지요.^^

그런 본인이야 더 했겠지요.
오히려 시어머니 눈치를 더 살폈다는...
알았으니 이젠 더 이상 조바심하지 말고 편하게 있다가라..하였다.

평소에도 가끔은 하지만,
앞으론 아이들 온다하면, 베게랑 이불이랑 바람도 쐴겸
햇볕을 더 많이 쬐여 보송보송하게 두었다가 내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