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풍경

2015. 10. 2. 06:16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얘야, 목욕 안 갈래"
"으~으~~으으으~~이~~"

무슨 소리인지 비몽사몽 간에 소리를 낸다.

"어제 간다고 했잖아, 안 갈래 그럼 엄마 혼자 간다."
"으....으응, 아니 나도 갈 거야 엄마"
"그럼 빨리 준비해라 늦으면 막내 학원 늦어서 안 돼!!"
"네 알았어 엄마"
"얼른 얼른 해!! 늦을라~~~"
화장실에 가서 목욕준비해서 챙겨들고 딸아이랑 함께 목욕하러 갔다. 

아직도 뿌옇게 밝아오지 않은 희미한 아파트 앞을 지나,
싸늘한 공기가 추워 딸아이랑 팔장을 끼고 골목길을 지나 목욕탕으로 향했다.

막내 아침 때문에 바쁜 난 서둘러 목욕을 마치고,
딸아인 천천히 하고 오라고 두고 서둘러 집으로...
아직도 안방과 막내 방은 한밤중이다.

"막내야 일어나야지 늦겠다."
"으으잉......알겠어요. 좀 더 있다...."
"늦을라. 얼른 일어나 알았제"


늘 이렇게 일어나는 걸 힘들어한다.
밤늦게까지 앉아 있지 말고 좀 일찍 자라고 해도
말 안 듣고 늦게 자니까 그렇지 

부엌에서 아침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디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가만히 귀 기울여 들었더니, 막내 목소리 

"엄마!!~~~~"
"왜??"
"엄마~~잠깐만 여기 와 보세요."
"응 알았어....왜??"
화장실 문을 열고 내다보는 아들의 머리가 물에 흠뻑 젖어있다.

"엄마, 샴푸 어딨어요??"
"아고~~우짜노?? 얘야 아직도 누나가 안 왔네...미안해"
"알았어요. 비누로 감죠 뭐......."
에고 얘는 왜 아직도 뭐하고 안 오노??
목욕탕 물 다 마시고 있나! 뭐 하노??
다음 타자로 짝꿍이 씻으려 들어 갈텐데...........샴푸!!! 

"막내야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디 가려구요??"
"응, 아빠 때문에, 머리 감다가 샴푸 없으면 않되잖아. 얼른 갔다 올게"
"누난 아직도 안 왔어요...."
"응...얼른 갔다 올께.." 

그리고 난 가만히 현관문 열고 화닥닥 계단을 콩콩(조심스럽게) 뛰어내려갔다.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서 목욕탕까지(아직 이른 아침이라 가계 문이 닫혀있기에,
사 둬야지 사둬야지 해놓고는 깜빡하고 또 잊어버렸으니까,
가지고 간 샴푸밖에는 없어서...히)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때야 긴 머리 말리느라 거울 앞에선 딸아이가 놀라.

"엄마!! 왜?? 무슨 일 있어요??"
"이그 좀 빨리 오지 이때껏 모 했노?? 샴푸 때문에 왔지 뭐, 아빠 화낼까 봐"
 

그리곤 샴푸만 빼들고는 후닥닥 숨 가쁘게 달려서 다시 집으로. 
성큼 성큼 두 계단씩 건너뛰다 싶이해서 올랐지만,
오잉 짝꿍은 벌써 화장실 안에 있네... 

"막내야 아빠 샴푸 안 찾았니??"
"네. 방금 들어가셨어요." 

그때야 후유~~~한숨을 돌렸다.
쿠쿠쿠 이렇게 무서워서 우찌 살겠노??


언제나 늘 이렇게 살얼음판 걷듯이 생활해 왔답니다.
요즘 새댁들 이렇게 살라고 함 못 살 거야.
이렇게 나처럼 살지는 않을거야...영리하니까.
어느 쪽이 잘하는 건지는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만, 전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날 아침 목욕 마치고 올라온 딸아이의 손에는
한 손엔 목욕바구니, 또 한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
히~~그 속엔 샴푸랑 린스가 한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쿠쿠~~~목욕탕 아줌마에게 창피 당해서 속상했다는 표현이지요...모....힛


01년 2월달의 이야기 한 자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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