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2015. 9. 23. 06:15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입동이 지나고 찬바람이 부는 이 무렵이면 특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몇 해 전 퇴근길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뒤편에 차장 밖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대조적인 인상의 두 할머니에 시선이 머물게 되었다. 

당당한 체구의 강한 인상을 주는 60대와, 불빛아래 백발이

눈부신 안온한 표정의 따뜻한 눈길을 지닌 여든 안팎의 두 분이었다.

이들은 동행인은 아닌 듯 보였는데 몇 정류장 지난 뒤에야
비로소 같은 버스에 탑승했음을 알았다. 

승객들 여럿이 내려 버스 안에서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

뒤에야 이들을 본 앞좌석의 두 젊은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다"는 말씀을 여러번 하시면서 앉은 백발 할머니와는 대조적으로

말없이 먼저 덥석 자리잡은 60대 할머니는 앉자마자 카랑카랑한 금속성 음성으로 말했다. 

"요즘 젊은것들은 자기들만 알고 도무지 위아래를 모르니,
영 글렀어, 몹쓸 것들 같으니....저들은 늙지 않나 두고 보라지..."

 

그 할머니는 뒤에 앉은 손 위의 할머니에게 동의를 구하는 듯 했다.
원망과 불만이 뒤섞인 꾸중과 한탄어린 소리가 나온 뒤 버스 안은 잠깐 조용해지는 듯 했다.

곧이어 백발 할머니의 나지막히 속삭이는 듯한 말씀이
차안에 있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자못 숙연했던 당시의 분위기는 생생하여 좀처럼 지워지질 않는다. 

"여보, 늙고 쓸모 없어지는 것은 서글프고 서러운 일이나
우리들보다는 젊은이들이 더 애처롭지 않소, 우린 이 만큼 살았으나,
저 어린것들은 공부로 해쓱해진 얼굴로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만원버스에 이리저리 시달리고 있고, 젊은이들은 처자식을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여기저기 뛰어다녀 파김치가 되어있지 않우.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집이나 지킬 일이지 이 시간에 쓸 때없이 나다녀
이들에게 걸리적거리느냔 말이유. 차 삯도 안내고 자리나 차지하고 있는 것이
미안하지나 않우......"
처음 할머니의 답변은 없었다. 

철없는 잘못을 응석으로 받아주며, 때로는 호된 꾸지람으로 일깨워주는

노인들이 있고, 이를 귀담아 들어 따를 줄 아는 젊은이가 있는 한. 우리사회는 희망적이다.

늙는다는 것이 서글프고 추한 것이 아니라 그윽한 아름다움이란 것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노인들과 이를 제대로 알아보며 든든해하는 젊은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깃들 글이지요.
공감이 가는 글이기에 밝아오는 새 아침에 함께 읽어보았으면, 하고 퍼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저물어 가는 세대. 늙어 가는 걸 한탄하고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여유롭고 푸근하게 지는 저녁노을처럼 곱고 아름답게 저물어 갈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어른인데, 하고 대접을 받으려는 생각보다는
내가 먼저 베풀며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늙은이라고 무조건 배척하는 그런 젊은이들의 고리타분한 생각은 싫습니다.
젊은이의 생각이 옳을 때도 있으며, 늙은이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답니다.

 

확실하게 어느 쪽이 옳다고는 못 하지요.
상부상조하며 둥글둥글 서로 존중해 주며,
아껴주며,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