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9. 05:57ㆍ뿌리를 찾아서/묘역 답사
소재지 :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
[안내팻말]
[홍살문과 남이장군 묘역]
경기도 가평군에서 남쪽으로 약 3.8km 지점에 있으며, 행정구역상 춘천시에 속하나 가평군 달전리와 접하므로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거쳐 간다.
조선 세조 때 이름난 무관인 남이장군의 묘가 있다고 하여 남이섬이라 했으며, 총면적은 약 0.453㎢이며, 둘레는 약 4km이다.
넓은 잔디밭과 잘 정비된 오락 시설이 있어서 관광지로 유명하다.
[안내판 전경]
[안내판 글 내용]
남이장군은 세종 23년 계유, 서기 1441년에 출생하여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예종은 그를 꺼려했다.
李施愛(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여 1등 공신이 되었고, 또 서북변의建州衛(건주위)를 정벌하여 26세에 공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남이가 단연 두각을 나타내면서 병권을 잡게되자 이를 가장 꺼려한 사람이 당시 세자이던 예종과 유자광이었다.
[北征歌(북정가) 詩碑(시비) 전경]
北征歌(북정가) 이 시조는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고 건주위를 정벌하여 27세의 젊은 나이로 병조판서에 올랐을 때 지었던 작품이다.
[北征歌(북정가) 詩碑(시비)]
北征歌(북정가) / 남이장군
白頭山石 磨刀盡 (백두산석 마도진) / 백두산 돌은 칼로 갈아 다하고
豆滿江水 飮馬無 (두만강수 음마무) / 두만강 물은 말 먹여 없애네.
男兒 二十未平國(남아 이십 미평국) /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치 못한다면
後世 誰稱 大丈夫(후세 수칭 대장부) / 훗날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
예종 즉위 후 대궐에서 숙직하다가 彗星(혜성)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이 깔릴 징조라 말하였는데',
평소 그의 승진을 시기하던 유자광이 이 말을 엿듣고 반역을 꾀한다
장군이 지은 詩(시) 北征歌(북정가)의 글 한자를 바꾸어 역적으로 몰아 그를 처형당하게 하였다.
男兒 二十未平國(남아 이십 미평국)을 노래했던 장군의 詩(시)를
男兒 二十未得國(남아 이십 미득국)이라, 글자하나를 바꿔 모함한 유자광에 의해 어이없이 역적의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다.
순조 18년(1818) 官爵(관작)이 복구되었으며, 시호는 忠武(충무)이다.
[남이장군 묘 전경]
남이장군이 묻힌 장소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가 묻혔다는 전설이 담긴 돌무덤이 있고, 그곳의 돌을 함부로 가져갈 경우 집안에 우환이 생겼다고 한다.
이로 인해 관광회사에서 그 돌무더기에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들고, 둘레를 잘 꾸며 지금의 묘를 만들었다 한다.
그의 묘는 경기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있다.
[南怡將軍追慕碑(남이장군추모비)]
[南怡將軍(남이장군) 墓(묘)]
그는 좌의정 權擥(권람)의 사위이다.
권람의 사위가 된것도 전해져 오는 사연이 있다.
남이 장군이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한양의 외가에 들려 그곳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가 젊은 처자 하나가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빨간 보자기로 무엇인가를 싸 가지고 머리에 이고 가고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니 분 바른 요괴 하나가 보따리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른 아이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나머지 그 여자의 뒤를 쫓아가다 보니 어느 고래등 같은 기와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조금 있더니 집안에서 갑자기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이는 '분명히 그 귀신의 짓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들어갔다.
[좌측 문인석]
[우측 문인석]
[장군의 묘에서 본 홍살문 전경]
그날 저녁 퇴궐하여 집에 돌아온 권람은 그간의 전말을 듣고 귀신을 쫓았다는 도령을 범상치 않은 인물로 생각했다.
권람은 점장이를 불러들여 남이의 사주를 짚어 보게 했다.
"대감, 아무래도 제명대로 살기가 어렵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권람은 다시 딸의 사주를 짚어 보게 했다.
"여쭙기 어렵사오나 따님의 명도 역시 매우 짧을 듯하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식도 두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도령을 사위로 삼아도 그 복만 누리실 뿐 화는 보시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남이를 사위로 삼았다한다.
귀신을 쫓아준 인연으로 권람의 사위가 되었던 남이는 점장이의 말대로 명대로 살지 못했지만, 그의 부인은 옥사가 있기 전에 죽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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