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2015. 9. 2. 06:03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당신 도대체 왜 그래"
".........."
아직도 잠에 취한 나는 무슨 소린가? 하고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물 끓인다는 소리도 안 하고 왜 그래!"
아차! 순간 머리끝이 쭈뼛했다.
보리차를 끓이려고 가스불을 켜놓은 게 이제야 생각이 났다.

맥이 탁 풀린다.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평소처럼 초저녁잠이 많은 내가 잠든 뒤 혼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디선가 자꾸만 단내가 나서 무심코 열어본 부엌 빨갛게 단 주전자를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우선 가스불부터 끄고, 잠든 나를 깨운 거다.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머릿속이 텅 빈 것 같다.

"당신 암만해도 뭔 일을 낼 거야"
"이젠 내가 없으면 밥도 하지 마!!! 내가 다 할 게"

 

다른 때보다 눅어진 목소리지만,
내겐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린다.
왜 이럴까? 

"비타민C 이라고 하든가 두뇌에 좋다는 약 있다더라. 그거 사 먹어"
정말 그래야 할 것 같다.
냉수 그냥 먹는다며, 끓이지 말라고 한다.

다음날 새벽 난 까맣게 탄 주전자를 깨끗이 닦고
다시 물을 채워 불 위에 올려놓고는 부엌바닥에 쪼그리고 않아
책을 읽으며,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또 잊어버릴까? 두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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