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행복한 시어머니인가?

2015. 8. 31. 07:01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무슨 일을 하던지 잠시도 손자에게 눈을 땔 수가 없다.
심지어 잠을 잘 때에도 선잠을 잔다.

아래로 위로 옆으로 온 방을 휘젓고 다니며 자는 손자
이불과 요는 간 곳이 없고 맨몸으로 자는 아기 혹 감기 들까 걱정이된다.
이렇게 몸부림이 심한 건 건강하기 때문이라지만, 함께 자는 할머니를 걷어차는 건 괜찮지만,
장롱과 벽에도 쿵하고 부딪친다.

아야!~~한마디 하곤 금방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또 잠들어버리지만, 한번 깬 할머니의 잠은 청하기 어렵다.
어찌 어찌해서 겨우 들은 잠 또다시 손자 녀석의 잠버릇 때문에 깨고 이렇게 보내버린 한밤은 낮에도 늘 졸립다.

잠깐 한눈만 팔았다 하면, 금방 일을 저지른다.
따르릉 울리는 전화 돌아서 받는 사이...쨍그랑 깜짝 놀라 돌아서면,

어느새 유리컵을 들고 있다 놓쳤는지 발아래 깨진 컵조각들이 늘려있다.

"어머!! 잠깐 가만있어!! 가만히 있어!!"
"담에 할 께"
얼른 전화를 내동댕이치고 달려간다.

잘못한 건 아는지 아님 쨍그랑 소리에 놀랐는지 가만히 서 있다.
얼른 다가가서 우선 아기부터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연방 오지 마!! 오지 마!!

소리하며 쓸고 닦고 또 닦고 한다.
행여나 작은 유리파편이라도 남아 있으면 안되니까.

맨발로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아기 언제 다칠지 모르니까 깨끗하게 몇 번이고 닦아냈다.
유리컵은 위험해서 플라스틱 컵을 사두었지만, 어린 손자는 늘 유리컵 쪽에만 관심이 있다.

투명하고 깨끗한 유리컵 쪽이 더 좋아 보이나 보다.
컴퓨터도 켜고 자판도 꺼내놓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마구 눌려댄다.
아무리 꾸중을 해봐도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고 또다시 일을 저질러 버리는 손자
손자와의 24시간의 사투는 날 지치게 한다.

피곤이 쌓인 어느 날 드디어 조금씩 신호를 보내오던 몸이 반란을 시도했다.
내 몸이 아프니 모든 게 귀찮기만 하다.
내일은 토요일 큰아이도 온다고 하니, 온 식구 한자리에 모여 지내보라고
난 하루만의 휴식이라도 취하려고 손자를 데려다 주기로 맘 먹었다.

그리곤 다음날 새벽에 도착한 아들과 아침을 먹고는 부적동 며늘아기 집으로 데려다 주려 갔다.
일주일 만에 만난 아빠랑 뒷좌석에서 공시랑공시랑 뭐라는지 알지도 못하고 통역도 못할 소리를 자꾸 낸다.
약을 먹고 출발해서일까? 자꾸만 졸음이 몰려온다. 나른하다.
도착한 아파트엔 안사돈이 와 계셨다.
큰 딸내집에서 생신잔치도 해드시고 그리곤 막내딸 집에서 산후조리 좀 더 하라고 아기를 봐주고 계셨나 보다.

잠시 머물다 큰아이랑 동사무소에 가서 민지 출생신고를 하곤 큰아인 죽전사거리에 있는

알리앙스 예식장에 데려다 주고(친구결혼식) 우린 집으로 향했다.

손자는 낼(일요일) 오후에 데리러 가기로 약속하고, 오는 길에 병원에 들려

진찰하고 처방전 받아 약국에서 약을 사서 집으로 와선 먹고

"나 깨우지 마라요. 그냥 푹 잘래요."하곤 잠에 곯아 떨어졌다.
그리곤 저녁 무렵에 일어나 전화를 했다. 며느리집으로 아까 래규 떼놓고 올 때

울며불며 떨어지지 않으려던 아이를 어거지로 떼어놓고 왔던 게 마음에 걸려서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한참을 펑펑 울더니 사촌들이 놀려오니, 겨우 그쳤다며 지금은 잘 놀고 있다고 한다.

"얘야 낼 오후에 데리러 갈께"
"어머님 낼 말구요. 그 다음 날 데리러 오세요."
"왜? 너 힘들잖아...간난아기랑 래규랑 힘들잖아"
"괜찮아요. 그 사람도 왔구요. 엄마도 계시고, 월요일에 오세요. 하루 더 쉬시구요."

후후~~아마 아까 갔을 때 내가 너무 피곤해 보였나 봐요.
손자 때문에 힘이 들어서 병이 나신 건 아닌지 마음이 아팠나 봅니다.
하루라도 더 휴가를 주려는 며늘아기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왔습니다.
사실은 너무 피곤해 하고 아파보이니까...

"어머님 이젠 데려가지 마세요. 제가 볼게요."
하면서 힘들어하는 시어머니 생각도 해 주었답니다.
당장 나보다 더 힘들어할게 뻔하니까 그리는 하지 못하지요.
안 그래도 퇴원하던 날 하룻밤 재운다기에 두고왔더니, 그 사이에 천방지축 날뛰다

민지를 밟고 지나갔으며, 아기가 먹는 우유를 빼앗아 자기가 빨고 있었대요.
또 과자를 먹다가 아기도 먹으라고 입에 넣어주려고 해서 혼났다고...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행동하는 래규 민지랑 함께 놓아두면 더 불안하고

또 갖난아기(동생)랑 래규 함께 보려면 틈이 생길 것 같아서 그래서 다시 데려가겠다고 했더니,

며느린 며느리대로 하루의 휴가를 더 주는 것 같아요.

마침 맞물러 내려온 딸아이한테 아기도 있고 몸도 아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그냥 시켜서 먹고
대충 때운 게 마음에 걸렸지만, 며느리가 아닌 딸아이니까 이해해 줄 꺼야.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30년 가까이 낳아서 먹이고 키워온 딸아이랑
30년 가까이 떨어져 살다가 이제 한 식구로 들어온 며느리랑은 아무리 해도 틀리죠.
그러나 딸아인 30년 정에 머물고...며늘아인 앞으로 30여 년 떨어진 세월의 정을 쌓아가야겠지요.

딸아이 키우며, 서러웠던 일 속상했던 일 기뼜던 일
이젠 며늘아기랑 함께 서러움도 속상함도 기쁨도 함께 쌓아가야겠지요.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이제 겨우 30여년 살아온 새아기랑
60을 바라보는 저랑 누가 더 참아야 하는지는 전 잘 알아요.

예전의 시어머님처럼 완고하게 내가 어른인데..하며 그렇게 살진 않을래요.
하기야 요즘 시어머니 그런 시어머니는 없지요.
어쩌면, 오히려 당당한 며느리 밑에서 기도 못 펴고 사는 시어머니도 많다고 하드군요.


이렇게 그래도 간혹 이나마, 속상할 땐 속상한다고 푸념을할 수 있는 난 그래도 행복한 시어머니 맞지요. 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