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꽃

2019. 11. 21. 06:03갤 러 리/꽃과 열매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 284

 

 

옛날 시집보낼 딸 있는 집에서 꼭

심었다는 목화. 맞아요. 제 이름은 목화랍니다.

 

 

綿花(면화) 草綿(초면)이라고도 하며, 열대지방

원산이 많으나, 섬유작물로서 온대지방에서도 널리 재배하고 있다.

 

 

공민왕 12년(1363년) 문익점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길에 붓대롱에 몰래 넣어 가지고 왔다는 목화

 

 

원래 섬유작물로써 우리나라에서는 솜을 짜기 위해 목포 등

남부지역에서 예전에 흔히 재배했으나, 요즘은 학습용이나 관상용

정도로 허브원이나 토종식물 공원(생태원)에 심겨있는 정도다.

 

[애니메이션 편집]

 

꽃말 : 어머님의 포근한 사랑과 애틋한 마음

 

 

요즘도 목화가 재배되긴 하지만 말리거나 염색해서

꽃꽂이를 한다든지 하는 실내장식용으로 주로 이용된다.

 

허브샵 같은 곳에 가면 목화솜을 활용한

포푸리 같은 것을 만들어 걸어둔 걸 볼 수 있다.

 

 

목화재배를 모르고 있었던 시절에 서민들은 추운겨울에도

삼베옷을 입고 떨고 있었으나 목화의 대량재배에 의해 깔고 덮을

것을 마련하고, 의복의 혁명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씨를 덮고 있는 털을 솜으로 사용한다.

씨로는 기름을 짜기도 한다.

목화를 채취하고 남은 줄기는 겨울철 땔감으로

사용함으로써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중요한 작물이다.

 

 

처음 목화꽃이 필 때는 전체적으로 옅은 미색을 

띄다가, 꽃이 질때면 분홍색 또는 보라색으로 변한다.

 

 

옛날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에는막 생긴 솜을

먹기도 했다 하네요. 달달한 맛이 좋았다고 합니다.

 

 

목화꽃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한자락 소개할께요.

 

아주 오래전에 중국의 모노화라는

예쁜여인이 있었는데 혼인을하여 예쁜딸아이가

태어났대요.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전쟁터로 떠나야했고

나라가 망하면서 남편도 전사를 했다 합니다.

 

 

전쟁터라 먹을것이 없어 모노화는 딸을 살리기 위해

자기의 살을 도려내 음식을 만들어 딸에게 먹이고 그로인해

모노화는 과다 출혈로 죽었다 합니다.

 

 

모노화를 묻은 무덤에서 싹이나서 자라나 꽃을 피웠는데,

꽃이 진 자리에 하얀솜이나왔대요. 그 꽃을 모노화라 불렀답니다. 

 

모노화가 시간이 지나 목화라 불리게 되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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