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윤선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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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윤선도 유적지 追遠堂(추원당)
소재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전남민속자료 제 29호 [우측에서 담은 追遠堂(추원당) 삼문 전경] [안내판 사진과 글] [좌측에서 담은 追遠堂(추원당) 삼문 전경] 어초은 재각 追遠堂(추원당)은 현 종손의 조부인 윤정현(1882-1950)이 1935년 발의하여 추원당을 건립하고 묘비는 묘전에 오석으로 세웠다. [열린 대문에서 담은 추원당] 어초은사당을 지나 오솔길을 걷다보면 녹우당의 북쪽 숲속에 위치해 있는 추원당을 만난다. [追遠堂(추원당) 현판] [追遠堂(추원당)] [追遠堂(추원당) 돌 계단] 時享(시향)은 음력 11월 15일 어초은 사당에서 지내고, 이곳 추원당에서는 제관과 참배하는 후손들이 宿食(숙식)을 하며 문중회의를 한다고 안내판에 적혀있었다. [追遠堂(추원당)] 처마에 이어 설비한..
2016.01.08 -
고산 윤선도 유적지 어초은 사당과 묘소
소재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漁樵隱(어초은) 사당] 尹孝貞(윤효정, 1476~1543) 선생의 자는 希參(희참) 호는 漁樵隱(어초은)이다. 金宗直(김종직)선생의 문하인 錦南 崔溥(금남 최부)선생과 幽齊 林遇利(유제 림우리), 城隱 柳桂隣(성은 류계린)의 가르침을 받아 학문을 다지신 성리학자로서 퇴계선생(1501년)보다는 25년 율곡선생(1536년)보다는 60년 먼저 태어나신 분이며 학문이 뛰어나 해남향인들의 마음을 크게 열어 밝게 가르치게 하여주었다. [안내판 글 내용] [漁樵隱(어초은) 사당 전경] 이곳은 입향조인 어초은공과 불천지위인 윤고산의 사당을 따로 지었다. 그리고 집안 동쪽에 사대조를 받드는 안사당이 있다. 현존 5대 봉사를 하고 있는 안사당은 순종21년(1821)에 세웠으며 그..
2016.01.07 -
고산 윤선도 유적지 孤山祠堂(고산사당)
소재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노거수와 孤山祠堂(고산사당) 전경] 이곳 녹우당의 고산 사당은 영조 3년(1727년) 不遷之位(불천지위)로 지정되어 집밖에 따로 모셔져 있다. 불천지위는 안사당에서 4대까지 모시고 묘로 가는 대신 영구히 모실수 있게 하고 있는데 보통 국가에서 공이 인정될때 불천지위로 지정된다. 앞쪽 이팝나무와 뒤쪽 해송 그 옆으로 孤山祠堂(고산사당)이 어우려져 은근한 멋을 풍기고 있다. [孤山祠堂(고산사당)] 본관이 해남으로 선조20년(1587) 6월 22일 한성부 동부 현 서울의 종로구 연지동에서 아버지 유심과 어머니 순흥안씨의 2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孤山(고산)또는 海翁(해옹), 자는 約而(약이)다. 고산은 해남종가에 아들이 없자 8세 때 작은 아버지 유기의 양자로 입양돼..
2016.01.07 -
고산 윤선도 유적지 綠雨堂(녹우당)
소재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82 사적 제 176호 [노거수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는 고산의 고조부(4대조)인 어초은 윤효정 선생이 큰아들인 귤정 윤구(호남 3걸의 한분)를 비롯해서 아들들이 진사시에 합격한 것을 기념하여 심은 것이라 한다. 녹우당 바로 앞을 지키고 서 있다. [안내판 글 내용] [안내판 영문 글 내용] 녹우당이 있는 연동 마을은 예전에 연못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인공적으로 조영한 연못이 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白蓮洞(백연동)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연동이라 부르고 있다. [은행나무와 녹우당 솟을대문 전경] 綠雨堂(녹우당)은 해남 윤씨 가문의 고택으로 고산 윤선도와 선비화가 윤두서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綠雨堂(녹우당)'이란 당호를 써준 옥..
2016.01.06 -
고산 윤선도 유적지 유물관과 孤山詩碑(고산시비)
소재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고산윤선도유적지 입구 전경] [종합 안내도] [안내판 글 내용] [안내판 영문 글 내용] [녹우당 원림 안내도] [녹우당 안내도] [고산 윤선도 유적지 입구 전경] 고산 윤선도는 우리나라 국문학상 시조시인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송강이 가사문학의 대가라면 고산은 시조문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우리나라의 선비들이 대부분 한문문학과 경직된 사회구조의 틀 속에 갇혀 있을 때 고산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 섬세하고 미려한 시조들을 지어냈다. [관리소 건물] 고산의 생애는 한마디로 유배와 은둔의 생활이 거듭된 굴곡 많은 삶으로 그는 이러한 자신의 삶과 시름과 흥, 願(원)을 詩文(시문)으로 풀어낸다. [관리소 앞 동백] [대문에서 본 관리소] 이곳은 고산 윤선도..
2016.01.06 -
고산 윤선도 향기따라 보길도 樂書齋(낙서재)
소재지 :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명승 34호 [낙서재와 곡수당 안내팻말 전경] [곡수당에서 본 樂書齋(낙서재) 전경] 1992년 1월 11일 사적 제36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월 8일 명승 제34호로 변경되었다. [樂書齋(낙서재) 가는 길에 핀 들꽃] [樂書齋(낙서재)] 無悶堂(무민당) 등 건물 4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소실되고 집터만 남아 있다. 현재 복구 중이다. 시문을 창작하고 강론하던 곳으로, 동천석실과 마주보이는 곳에 있다. [樂書齋(낙서재)] 고산은 인조 13년(1637)부터 1671년 죽을 때까지 일곱 번이나 이곳에 드나들며 글을 쓰며 생활 했는데 햇수로는 13년이나 되어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지가 많다. [樂書齋(낙서재)] 樂書齋偶吟(낙서재우음) 낙서재에서 우연..
2016.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