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 유적지 綠雨堂(녹우당)

2016. 1. 6. 06:41문화산책/정자와 누각

 

소재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82
사적 제 176호

 

[노거수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는 고산의 고조부(4대조)인 어초은 윤효정 선생이
큰아들인 귤정 윤구(호남 3걸의 한분)를 비롯해서 아들들이
진사시에 합격한 것을 기념하여 심은 것이라 한다.
녹우당 바로 앞을 지키고 서 있다.

 

 

 

 

[안내판 글 내용]

 

[안내판 영문 글 내용]

 

녹우당이 있는 연동 마을은 예전에 연못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인공적으로 조영한 연못이 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白蓮洞(백연동)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연동이라 부르고 있다.

 

[은행나무와 녹우당 솟을대문 전경]


綠雨堂(녹우당)은 해남 윤씨 가문의 고택으로
고산 윤선도와 선비화가 윤두서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綠雨堂(녹우당)'이란 당호를 써준 옥동 이서는 집 앞의
푸른 은행나무 잎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을 보고 녹우당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氣(기) 체험장소]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맨 먼저 보이는 전경과 팻말에는
조용히 이곳에 잠시 서서 느껴 보세요!
좋은 기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라 쓰여있었다.

 

 

[연못]


기 체험장 팻말 뒤쪽 연못의 물은 말라버리고...밑바닥이 들어나보였다.

 

 

[연못 뒤쪽 초가]

 

[綠雨堂(녹우당)]


녹우당의 큰 건물들은 독특하게 2층처마이다.
녹우당은 고산이 수원에 있을 당시 효종이 고산에게

하사한 집으로 고산 윤선도는 봉림대군(효종)의 스승이었다.

녹우당은 고산이 82세 되던 1669년 뱃길로 옮겨와 다시 지었다.

 

 

[綠雨堂(녹우당) 현판]


현재 사랑채 현판으로 걸려있는 '綠雨堂(녹우당)'

당호는 고산의 증손자인 공재 윤두서와 절친했던 옥동 이서가

'綠雨堂(녹우당)'이라는 현판을 써준 것으로 이때부터 이집의 공식적인 명칭이 됐다.

 

 

[芸業(운업) 현판]


조용히 스스로 성찰하고 바라본다는 뜻이라고도 하고,
芸(운)은 잡초를 가려 뽑아 숲을 무성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고
직업, 학문, 기예의 뜻을 지니고 있어 늘 곧고 푸르며 강직한 선비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위의 한시는 해남 녹우당 사랑채의 운업 현판
옆에 걸려있는 懶山(나산) 선조의 漢詩(한시)이다.

 

 

[靜觀(정관) 현판]


선비는 조용히 홀로 있을 때에도 자신의 흐트러진

내면의 세계를 살펴 고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원교 이광사의 글씨라 한다.

 

 

[행랑채]


원래 호남지역 양반집의 건축양식은 'ㄷ'자이거나 'ㅡ'자 집이나
녹우당은 서울이나 중부지방 양반가와 같은 구조인 'ㅁ'자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때 아흔 아홉 칸에 달하던 녹우당 고택은 현재 55칸 정도만 남아 있다.

 

 

[안쪽에서 담은 녹우당 솟을대문]


우리나라 사대부 양반가의 고택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녹우당 하면 고택 전체를 뜻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나, 녹우당은 이 집의 사랑채를 말한다.


이 건물이 들어섬으로 인해 전체적인 모습도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 졌다고 할 수 있다.

 

 

[회화나무와 사랑채]


조선후기 공재 윤두서의 학문과 예술의 토대가 될 뿐만 아니라
다산 정약용, 소치 허유 등 쟁쟁한 문인예술가들이 머물거나 교류한 곳이 되어
해남의 문예부흥이 이곳 녹우당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녹우당 규방대문에서 본 사랑채]


녹우당의 역사는 고산 윤선도의 4대조이자 해남윤씨 어초은파의
시조가 된 어초은 尹孝貞(윤효정, 1476~1543)이 백연동에
자리를 잡으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이 집의 역사와 건축형태는
지금까지 장구한 시간의 흐름속에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거나
중건을 하고 또 보수 등을 거듭 하면서 오랜 세월을 이어와
지금의 녹우당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녹우당 규방대문]


현재 녹우당의 영역 속에 있는 주 건물로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헛간,
그리고 안사당, 어초은 사당, 고산사당과 좌측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초은 追遠堂(추원당)이 있다.


또한 이외에도 고산서원과 후원에 별당채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내일은 고산 사당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