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 향기따라 보길도 樂書齋(낙서재)

2016. 1. 5. 06:41문화산책/정자와 누각

 

소재지 :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명승 34호

 

 

[낙서재와 곡수당 안내팻말 전경]

 

[곡수당에서 본 樂書齋(낙서재) 전경]


1992년 1월 11일 사적 제36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월 8일 명승 제34호로 변경되었다.

 

 

[樂書齋(낙서재) 가는 길에 핀 들꽃]

 

[樂書齋(낙서재)]


無悶堂(무민당) 등 건물 4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소실되고 집터만 남아 있다.

현재 복구 중이다.

시문을 창작하고 강론하던 곳으로,

동천석실과 마주보이는 곳에 있다.

 

 

[樂書齋(낙서재)]


고산은 인조 13년(1637)부터 1671년 죽을 때까지 일곱 번이나
이곳에 드나들며 글을 쓰며 생활 했는데 햇수로는 13년이나 되어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지가 많다.

 

 

[樂書齋(낙서재)]


樂書齋偶吟(낙서재우음)
낙서재에서 우연이 읊다. / 尹善道(윤선도)


眼在靑山耳在琴(眼在청산이재금)
눈은 청산에 있고 귀는 거문고에 있으니
世間何事到吾心(세간하사도오심)
세상의 무슨 일이 내 마음에 이르랴.


滿腔浩氣無人識(만강호기무인지)
가슴속 가득한 호연지기를 아는 사람 없어
一曲狂歌獨自吟(일곡광가독자음)
한 곡의 미친 노래를 홀로 읊노라


尹善道(윤선도, 1587~1671). 號(호)는 孤山(고산),
조선시대 문인, 문집으로 '孤山遺稿(고산유고)'가 있다.

 

 

[안내판 글]


물(水), 돌(石), 소나무(松), 대나무(竹), 달(月)을
벗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으로, 序章(서장)을 포함하여

모두 6수로 되어 있는 고산 윤선도가 지은 五友歌(오우가)를 올려봅니다.

 

五友歌(오우가) : 윤선도 시조


내 벗이 몇인가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水(수)
구름빛이 맑다 하나 검기를 자주한다
바람소리 맑다 하나 그칠 때가 많은도다
맑고도 그칠 때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石(석)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음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松(송)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지하의 뿌리 곧은 줄을 그것으로 아노라


竹(죽)
나무도 아닌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귀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月(월)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치니
밤 중의 광명이 너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孤山遺稿(고산유고)' 가운데 '산중신곡'에 실려 있다.

 

 

[樂書齋(낙서재)]


보길도의 주산인 격자봉 혈맥을 쫓아 집터를 잡고

3칸의 초가로 된 樂書齋(낙서재) 를 지어 주로 은거했으며

생을 마감할 때도 이곳에서 고달폈던 삶의 끈을 놓았다한다.


본래 부용동 유적은 손님을 접대하던 세연정과
고산 본인이 살던 낙서재 그리고 낙서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바위산 중턱에 지은 단칸 정자 동천석실과 고산의 아들 학관이
휴식을 위해 지었다는 곡수당으로 구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