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儒林獨立運動巴里長書碑(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2016. 1. 20. 06:22뿌리를 찾아서/忠. 孝. 烈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1530

 

 

[韓國儒林獨立運動巴里長書碑(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전경]


巴里長書(파리장서) 운동은 1919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었던
세계만국평화회의에 한국의 유림대표들이 보낸 장문의 독립청원서를 말한다.


이 사건은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것으로
우리 독립운동사에 획기적이고 대단한 사건이었다 한다.


'韓國儒林獨立運動巴里長書碑(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파리장서의거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碑(비)로 한국유림대표 137인의 뜻을 모아
일본의 침략상과 한국의 피해 실정을 밝힌 1천420자에 달하는 장문의 글인
독립청원서(파리장서)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해
한국독립을 탄원한 또 하나의 '獨立運動(독립운동)'이었다 한다.

 

 

 [韓國儒林獨立運動巴里長書碑(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삼일운동 이후 유림의 인사들은 유림이 독립선언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이를 대신하여 파리장서에 서명을 하였다.


한국의 유림대표 곽종석. 김복한 등 137명이 김창숙의 연락으로
독립탄원서를 작성, 김창숙이 이 탄원서를 가지고 상하이에 가서 파리평화회의에 우송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발각되어 곽종석 이하 대다수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일부는 망명하였다. 곽종석. 하용제. 김복한 등은 감옥에서 순국하였고,
그 밖의 사람들도 형에 못 이겨 죽고 또 처형되었다.
국내 독립선언 문건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서명해 역사적 의의가 크다.

 

 

[안내판 글 내용]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 작성경위. 요지 안내문]


1973년 장충단공원에 최초로 파리 장서비를 세웠으며,
1977년 경남 거창, 1997년 대구 월곡역사공원, 2008년 정읍사 공원 등
1973년도부터 현재까지 전국 7곳에 각각 한국유림 파리장서 운동비를
설립하여 당시 한국 유림단의 다대한 공적과 위업을 기리게 하고 애국애족 정신을
고취함은 물론 민족정기 선양을 통해 잊혀져 가는 한국유림단의 독립운동사에 대하여
후세에 널리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