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선생 은거기념비와 의사 박공문용 기적비

2016. 1. 18. 06:47뿌리를 찾아서/忠. 孝. 烈

 

소재지 :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삼정리(쇠실 휴게소 내)

 

 

[백범 김구선생 은거추모비 전경]


해남 답사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쉬어가려 들린 쇠실휴게실.
그곳에서 우측으로 얕든 언덕에 세워놓은 백범 김구선생 은거비와
의사 박공문용 기적비를 만났다.

 

 

[안내판 내용]


그냥 지나칠 수 없지요.
예전같으면 아마 그냥 지나쳤을지도...

 

 

[좌측에서 담은 백범 김구선생 은거비 전경]


김구선생이 1898년 5월 하순 경부터 40여일간
쇠실마을에서 머물렀던 것을 기념하여 세운 추모비이다.

 

 

[의사 박공문용 기적비와 안내판 전경]

 

[안내판 글 내용]

 

[의사 박문용 기적비(좌)와 백범 김구 은거비(우)]


의사 박문용은 1882년 1월 15일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 10번지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9세 되던 해에 마을을 떠나, 중국, 러시아 등을 떠돌았고
신교육을  받고 20년 만에 돌아 온 박문용 그때 나이 30세였다.


마을로 돌아온 그는 고흥군에 있는 巨錦(거금)보통학교의 교장.
2년 후인 1913년에는 보성군 복내면장에 취임하고 그해 6월에 겸백면장으로
자리를 옮겼다한다. 자세한 내용을 위에 안내판으로 대신합니다.

 

 

[백범 김구 은거 사적비]

 

[백범 김구선생 은거기념비]


김구가 쇠실마을을 떠나려고 하자 그를 따라나서겠다는
일꾼이 적지 않아 그들을 말리며 나중에 자리를 잡으면 부르겠다고 한다.
이 때 김구가 남긴 이별시를 아래에 올려봅니다.

 

 

[백범 離別難(이별난) 詩碑(시비)]


離別難(이별난) / 백범 김구


離別難離別難(이별난이별난)
이별이란 어렵구나 이별이란 어렵구나
離別難處花樹開(이별난처화수개)
이별하기 어려운 곳에 일가의 정은 피어나고


花樹一枝分折半(화수일지분절반)
일가의 정 한 가지를 절반으로 꺾어
半留宗家半帶行(반유종가반대행)
반 가지는 종친 댁에 두고 반 가지는 가지고 가네 


生我天地逢何時(생아천지봉하시)
우리가 태어난 이 천지 무슨 때를 만났길래
捨此江山去亦難(사차강산거역난)
이 강산을 뒤로하고 가기도 또한 어렵구나


四員同遊至月餘(사원유지월여)
네 사람이 함께 한 달 남짓 보냈는데
齟齬惜別而去也(저어석별이거야)
떠나기 아쉬운 정을 곱씹으며 떠나간다.

 

 

[다시 한번 기념비를 배경으로..]

 

[쇠실 휴게실 전경]


우연찮게 만난 두 분 선인들의 기념비.
숙연한 마음으로 시비와 안내판을 보며 그분들을 생각해 보았다.
이러한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굳굳하게
지켜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란 생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