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가 시인 高靜熙(고정희) 생가

2016. 1. 13. 06:38문화산책/고택과 문학관

소재지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 259

 

 

[고정희 생가 ]


고정희 생가는 마을 초입에 있다.
대문 옆에 커다란 안내판을 세워놓아 집 찾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집앞 안내판 글]

 

[활짝 열린 생가 대문]

 

안내판에 자세히 적혀 있으니 고정희 시인에

관해서는 여기서는 더 말씀드리지 않고

시인님의 詩(시)를 몇수 올려볼까합니다.


삼산면 송정리마을은 스무살 무렵까지

그녀가 문학소녀로서의 꿈과 희망을 키우던 마을이며,

이러한 뿌리가 그의 초기 詩(시)에
토속적 서정이 짙은 근원이 되기도 하였다한다.

 

쓸쓸한 날의 연가 / 고정희


내 흉곽에
외로움의 지도 한 장 그려지는 날이면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쓰네
봄 여름 가을 겨울 편지를 쓰네
갈비뼈에 철썩이는 외로움으로는
그대 간절하다 새벽 편지를 쓰고
허파에 숭숭한 외로움으로는
그대 그립다 안부 편지를 쓰고
간에 들고나는 외로움으로는
아직 그대 기다린다 저녁 편지를 쓰네
때론 비유법으로 혹은 직설법으로
그대 사랑해 꽃도장을 찍은 뒤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부치네
비오는 날은 비오는 소리 편에
바람부는 날은 바람 부는 소리 편에
아침에도 부치고
저녁에도 부치네
아아 그때마다 누가 보냈을까
이 세상 지나가는 기차표 한 장
내 책상위에 놓여 있네

 

 

지울 수 없는 얼굴 / 고정희


냉정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얼음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불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부드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 썼다가
이 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南汀軒(남정헌) 전경]


대문을 들어면 마당 왼쪽에 고정희의 유품만으로 집안을 꾸민
南汀軒(남정헌)이 있고 안쪽으로 고인의 오빠가 살림을 하는 신축 양옥이 있다.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으로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로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南汀軒(남정헌)]


유품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는 南汀軒(남정헌)안
서재 책꽂이 위에는 시인이 살았을 때의 사진이 놓여있다고 하지만...
안쪽에 신축 양옥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낄 수 없고,
그렇다고 닫힌 문을 열고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어서...아쉽지만, 돌아섰다.

 

그대 생각 / 고정희


너인가 하면 지나는 바람이어라
너인가 하면 열사흘 달빛이어라
너인가 하면 흐르는 강물소리여라
너인가 하면 흩어지는 구름이어라
너인가 하면 적막강산 안개비여라
너인가 하면 끝모를 울음이어라
너인가 하면 내가 내 살 찢는 아픔이어라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생가 앞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