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26. 03:30ㆍ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난 늘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해자였다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남편이 지나가는 말처럼
"난 요즘 당신이 무서워서 말도 잘 못해, 삐치고 화낼까봐."
순간 난 어안이 벙벙했다.
거꾸로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뭔 말?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말에 그냥 귓등으로 흘러 들으며, 속으로 불만만 쌓였다.
그런 어느 날 함께 길을 나선 날
늘 핸들은 내가 잡지만, 길은 남편이 가르쳐 주는 대로 간다.
쌍 갈래 길이 저 앞에 보이기에 물었다.
"어디로 갈까요?"
초행길이라 잠시 망설이든 남편은 위쪽 길로 가자고 하기에 얼른
윗길로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순간.
"이 길이 아닌데"
"당신이 이 길로 가자고 했잖아요."
"왜 화를 내고 그래!. 아니면 다시 가면 되지!"
"나 화 내지 않았어요. 그냥 이 길로 가자고 당신이 그랬다고 했지."
"당신은 안 그랬는지 몰라도, 분명 목소리가 컸어 화낸 목소리였어"
정말 난 아니었는데,
순간 억울하다는 생각과 함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한참을 우린 서로 말없이 달렸다.
그리곤 시간이 흐르자 우린 슬슬 서로 눈치를 살피며 풀어졌다.
그날 밤 어쩌다 잠을 놓친 난 옆에서 곤하게 자는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언젠가 남편이 한 말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늘 나만 당하고 나만 피해자라고 생각한 내 생각이 옳지만은 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정말 그랬는지도 모른다.
살아오며 가득 찬 불만들이 좋은 말에도 신경이 곤두섰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른 스펀지에는 물을 부으면 다 받아들이지만....
물이 가득 찬 스펀지는 건드리기만 해도 물이 흐른다는 걸....
어쩜 살아오며 참고 참았던 삶의 조각들을 비우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아두어서 건드리기만 해도 나도 몰래 폭발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났다.
서로 가장 위하고 서로 가장 많이 안다는 우린
늘 이렇게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나보다.
그인 그이대로 난 나대로. 서로 의 상처만 끌어안고 상대편을 원망했는지도 모른다.
순간 언제나 착한 척 선한척한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래 그이도 피해자일 수도 있었으며
나 또한 가해자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 더 조심하고 상대방을 바꾸기보다 내가 먼저 바뀌자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이 사랑하고 대접을 받고 싶으면
남을 먼저 대접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 내가 변하자 피해자라고만 생각한 내 생각을 버리자.
때로는 나도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두고 생활하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생활에 임하는 순간 남편의 달라진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변하면 되는 것을 여태껏 상대방이 변해줄 것을 기대한 나의 이기심이 부끄럽다.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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