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물 베기

2015. 7. 25. 05:41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엄마 언제 올꺼야??"
"가만 지금 아빠가 안계시니 들어오시면 의논해봐서..."
"그럼 엄마 연락주세요."
"알았다. 연락할께..."

딸아이 시댁에서 쌀이랑 고구마랑 고추랑 등등....
농산물을 우리에게 드리라고 보냈다며,

그거 가지려 언제 오려는지 자꾸 묻습니다.
밖에서 들어온 옆지기에게 이야기하고 물었지요.

"어떻게 할래요. 갈래요. 말래요."
"으..음...생각 좀 해보고....언제 갈까?"
"글쎄요. 당신이 정하세요."

목요일엔 옆지기가 일이 있어서 안되고...
금요일에 갈까 했지만, 금요일 밤엔 서울있는 막내아들이
내려온다고 하니 집을 비울수가 없고....어떻할까...궁리끝에...

다음주 월요일에 가자 하고 정했습니다.
여행다녀온 기행문을 아직 다 쓰지 않았기에....
혼자서 끙끙 앓고 있는데.. 따르릉 친구한태서 전화가 왔다.

"공짜로 홈페이지 제작하는법 가르켜 준대..."
"어디서??"
"우리집에서 걸어 10분 밖에 안 걸려.."
"그럼 멀어서 안되겠다. 난 멀잖아"
"그래도 할 수 있다. 저녁에 한대....7시~9시까지..."

흐미 그건 정말 더 안되지...밤에 어떻게 나가...
낮에도 나가는걸 싫어라 하는 옆지기 택도 없지....
27만원 수강료받고 가르키는걸 다음주 월요일부터 2주간 무료로
가르켜 준다는 소리에...잠퉁이가 귀가 솔낏해서....

그저께 수원 가기로 한 약속을 잊었다.

"여보~한달에 27만원 내야 배우는 홈페이지 제작하는 고급코스를 가르켜 준대요."
"근데......저녁이라 좀 그렇죠. 아무래도 안되겠죠."
"이사람이 정신이 있나없나!!! 다음주 월요일에 수원딸아이한태 갔다가
한이틀 더 있을수도 있는데..뭐라고??"

"잊었어요. 깜빡...."
"잊을께 따로있지 잊었다고하면 다야!!"
"내일 결혼식 있다고 내내 말해놓고 막상 내일 잊고 안간적도 있잖아요..정말 깜빡했어요."
"알았다!! 전부 내 잘못이네...그런 사람하고 말한 내 잘못이네!!"

에고....차근차근 조근조근 말해도 알아 들을탠데.....ㅠ.ㅠ
울컥 또 화가 치민다. 크게 잘못한것도 아닌데...
하긴 잊은 내가 잘 했다는 건 아니지만,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잊게했나보다.

모임에 갈 시간이 되었지만, 마음도 풀지 않고 
평소엔 들고가지 않는 집 열쇠를 챙겨 쥐고 나가며....

"열쇠 가지고 가니까....어딜 가든지 당신 맘대로 해!!"
"가긴 어딜 가요. 저녁에 어디나가는거 봤어요. 안가요. 집에 있어요."
했지만, 돌아도 안보고 가는 뒷모습이 바람이 쌩 분다.

현관문을 닫고.....궁시렁 궁시렁...
내가 뭐 크게 잘못한게 있다고....내가 배우려 간다 했나 뭐....
배우려 간다고 했으면 클 날뻔했네...잊을수도 있지....그럴 수도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속이 상한다.
컴앞에 앉아도 생각은 다른곳에서 놀고....
테레비를 봐도 집중을 할 수가 없다.

혼자서 끙끙 속을 달랬다.
잠퉁이가 잠도 못자고 기다렸다.
올 시간이 되어....발자국 소리가 났는데....벨소린 없다.
딸그락 딸그락 채칵 열쇠 돌아가는 소리.....

"누구세요?"
"내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나보다.
아고고 오늘 밤은 우짜노...죽었다...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걸 보니 아직두 화가 덜 풀렸나보다.
어쩌지....아고 몰라 그냥 모른척 하는 수 밖에..
돌아앉아 열심히 테레비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안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며....

"아이, 추워 밖이 너무 춥다."
혼잣말처럼 하기에 모른척 하고 그냥 테레비만 연신 쳐다보았다.
혹 잘 못 거들었다가 됀통 혼날까 두려워 모른척했다.
조용하기에 안방으로 들어간줄 알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껴안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어머, 깜짝 놀랐잖아요."
"미안해....여보 미안해..."
"괜찮아요..."
"가면서 생각하니 미안하드라...미안해..."
"당신이 밤에 나간다고 하니 그게 싫어서 정말 싫어서...그랬어.."

아하 그렇구나
낮에도 나가는거 싫어하는 사람이 더구나 밤에 나간다니 그게 싫어서 화를 냈구나....
난 수원갈 일을 잊어서 그런줄 알았는데...
원인은 따로 있었네....
이렇게 사과도 잘하고 금방 잘 풀리면서...
남의속을 끍는대는 뭐가 있다..미워 미워 미워...

"포도액기스 드릴까요? 잡수실래요?"
"응............먹어볼까? 당신하고 같이...."
이렇게 풀어버렸다.

깨운하게 다 풀린건 아니지만, 적당할때 풀어버릴줄도 알아야 한다.
다시 화가나면 처음보다 더 무섭게 헐크로 변해버리니까..
이쯤에서 화해의 손짓에 마주 손을 잡아야 한다.

 


2003년 12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