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25. 06:31ㆍ뿌리를 찾아서/대통령 묘역
소재지 : 충청남도 아산시 동천리 2구
[碑閣(비각) 전경]
[國泰民安(국태민안) 현판]
[敬天孝親(경천효친) 현판]
[碑閣(비각)과 碑(비)]
윤보선 대통령 묘소 입구 공터 안쪽으로 碑閣(비각)이 세워져 있었다.
비각에는 敬天孝親(경천효친) 國泰民安(국태민안)이란 편액이 걸려있으며,
비각안에는 윤대통령 역대 조상님들의 공적비 등이 모셔져 있다.
[안내판과 묘소 오르는 계단]
[안내판 글 내용]
가족 묘소는 이 비각의 오른쪽에 돌계단이 있는데
그곳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가족묘 맨 윗쪽에 윤보선 대통령의 묘소가 있다.
돌계단이 제법 길어요.
따라 올라보셔요.
가도 가도 계단으로 이어지는듯...
그러나 이 계단 끝에는 묘역이 보일듯...
[해평 윤공 瀅善(형선) 지묘]
처음으로 만난 가족 묘(윤대통령의 막내 동생)
꽃잎은 눈오듯 휘날리고,
땅에 떨어져 하얀 눈꽃송이같아 보였어요.
[윤대통령 부모 묘]
윤대통령 묘소로부터 3번째 아래쪽에 있는
부친 尹致昭(윤치소)선생과 모친 전주이씨 묘소이다.
다시 또 계단이.....
[협판공 내외분 묘소]
위로부터 두번째 묘는 윤대통령의 고조할아버지
협판공 내외분의 묘소로 이 산에 가장 먼저 쓰여진 묘소라 한다.
맨 윗쪽에 윤대통령의 묘소가 있는 곳입니다.
옆 돌계단을 다시 올라가야겠지요.
묘역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마지막돌계단]
이곳을 오르면 곧장 해위 尹潽善(윤보선) 대통령의 묘소가 있습니다.
[海葦(해위) 尹潽善(윤보선) 대통령 묘소 전경]
국립묘지를 마다한 채 이곳 선영에 대통령 본인이
준비해 두고 가꾸신 자리라 합니다.
조상들의 묘소보다 더 위쪽에 자리잡은 것에 대해
할아버지가 손자를 어깨에 무등 태우고 계신 모습과 같지 않으냐 고
평소에 말씀하셨다 합니다.
[海葦(해위) 尹潽善(윤보선) 대통령 묘]
비석은 돌아가신 지 십년되는 2000년 7월 큰아들이
글은 조카 이기종이 다듬고 글씨는 여초 김응현 박사가 썼으며
둘째 아들이 비석 모양을 설계하여 세운 것이라 합니다.
[海葦(해위) 尹潽善(윤보선) 대통령 묘비]]
윤보선 대통령과 영부인 공덕귀여사 묘는 합장으로 모셔져 있다.
영부인이 기독교신자로서 권사직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직분을 새겨 넣었다
[백일홍 나무와 묘소 전경]
민족사바로잡기국민회의 의장으로 활동하시다가
1990년 노환으로 종로구 안국동 자택에서 돌아가셨다.
윤보선 대통령은 친일파후손이나 그 자신은 일제와 맞서 싸운 인물이지요.
불행한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 입니다.
인촌문화상을 받았으며, 저서로 '구국의 가시밭길'이라는 자서전이 있다.
[묘 뒤쪽에서 바라본 안산]
산의 모양이 龍(용)이 고개를 쳐들고 하늘로 오르려는 모습과
닮았다하여 飛龍山(비룡산)이라고 한다 합니다.
이 비룡산에 산소를 잡게된 연유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얘기가 있습니다.
득실공의 삼남 찬정공께서 마흔이 넘도록 자녀가 없으셨는데
항상 집 앞에 죽을 쑤어 놓은 등 많은 적선을 하였답니다.
[묘 뒤쪽 둔덕에 핀 진달래]
어느 날 둔포 장을 다녀오다가 노상에 쓰러져 기진맥진해 있는 스님을 보고
오가는 길손 모두 그냥 지나쳤지만 집에 업고 와 극진히 보살펴주었답니다.
기력을 회복한 스님이 은공을 갚겠다면서 묘 자리를 하나 점지해 주었다.
곧바로 그 자리에 아버지 묘를 이장했다.
이후 뒤늦게 아들까지 낳고 아산의 해평윤씨 집안은 용광로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듯 큰 복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며,
하는 일마다 성사되어 재물도 크게 모았고 자손들이
객지에 나가기만 하면 관직에 올랐다.
이 얘기는 설화가 아니고 충남의 내포지역(서해안을 낀 장항선 일대)
옛 어른들 사이엔 널리 알려진 얘기라 합니다.
그러나 묏자리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덕을 쌓으시고
좋은 일을 많이 하신 결과가 더 크다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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