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 묘소

2015. 11. 18. 07:08뿌리를 찾아서/대통령 묘역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 2동

 

[초대대통령 이승만 박사와 영부인 프란체스카여사 묘소 안내팻말]

 

[묘소로 오르는 계단 전경]

 

[돌계단]

 

이승만 대통령은 1875년 3월 26일 황해도 평산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서재필 박사와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해 독립사상을

전파하고 민족계몽에 앞장섰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 상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항일투쟁 외교활동을 펼치던 중 광복이 되자 귀국하여,

1948년 제헌국회의장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거치면서 해방직후의 혼돈을 극복하고

자유민주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졌다.

 

[계단 위에서 담은 이승만 내외분 묘소 전경]

 

앞서 온 방문객들이 여기저기서 추억을 담고 있네요.

 

 

[대한민국초대대통령 이승만박사 기념비 앞면 전경]

 

[기념비에 새겨진 글 내용]

 

[대한민국초대대통령 이승만박사 기념비 후면 전경]

 

[묘 앞쪽 헌시 碑(비) 전면]

 

[헌시 碑(비) 후면]

 

[이승만 대통령 내외분 묘소]

 

6. 25전쟁의 국난을 극복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반공 포로를

석방하였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한미동맹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4·19민주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하야한 뒤 하와이에서 생활하다

1965년 7월 19일 서거하여 동년 7월 27일 가족장으로 영결식을 거행하고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국립묘지에 최초로 안장된 국가원수이다.

 

 

[묘비]

 

[이승만 대통령 내외분 묘소]

 

영부인 프란테스카 도너 리 여사

 

1900년 6월 1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이승만 대통령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193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연맹회의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만나 1934년 10월 8일 뉴욕시에서 결혼하고

1948년 영부인이 되었다.


1992년 3월 19일 이화장에서 향년 93세로 서거하여 3월 23일 가족장으로 이 곳에 합장되었다.

 

 

[좌측에서 담은 묘소 전경]

 

이승만 대통령은 물러난 후 겨울에 난방할 땔감도 없었다.

하와이에선 교포가 내 준 30평짜리 낡은 집에서 궁핍하게 살았다.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 친정에서 옷가지를 보내줄 때 포장한 종이 박스를 옷장으로 썼다.

교포들이 조금씩 보내준 돈으로 연명하며 고국행 여비를 모은다고 5달러 이발비를 아꼈다. 

늙은 부부는 손바닥만 한 식탁에  마주 앉아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렸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묘소에서 바라 본 안산 전경]

 

이 대통령이 우리 음식을 그리워하자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서툰 우리말로 노래를 만들어 불러 줬다고 한다.

이 대통령도 따라 불렀던 그 노래를 이동욱 작가가 전한다.

 

날마다 날마다 김치찌개 김치국

날마다 날마다 콩나물국 콩나물

 

날마다 날마다 두부찌개 두부국

날마다 날마다 된장찌개 된장국.

 

 

[다시 담아 본 이승만 대통령 내외분의 묘소 전경]

 

조선일보 양상훈 논설주간이 신문에 실은 칼럼에는.... 

 

'평생을 反日(반일)한  이 대통령을  親日(친일)이라고 

하고, 평생 用美(용미)한 그를 親美(친미)라고 하는 것은 사실을

모르거나 알면서 매도하는 것이다' 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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