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25. 04:45ㆍ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친구랑 모임이 있어서 집을 나섰다.
옆지기 퇴직 후엔 집을 나서기가 왠지 조심스럽고 부담스럽다.
이젠 많이 편해졌지만, 그래도 옆지기를 혼자 두고 나서긴
아직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집 걱정하지 말고 느긋하게 쉬다와~~"
"알지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 양보운전 오늘은 비가 오니 더 조심!!"
염려 섞인 옆지기의 말을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오며 또 속상함이 묻어나려고 한다.
"잘 다녀와~" 하고 한마디로 끝내지 못할까?
불편함이 스멀스멀 차올라온다.
하긴 나도 그렇다. 그냥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걸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라고 그렇게 대범하게 받아들이면 될 걸
살아오며 알게 모르게 쌓인 불만들이 자꾸만 하찮은 말 한마디에도 서운해지려 한다.
툭 털어버리지 못하는 나, 옆지기보다는 내게 더 문제가 있는 거나 아닌지.
보슬비가 내리는 것 같지도 않게 내리면서 공기 자체가 눅눅하다.
약속장소에 들려 먼저 온 친구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친구를
기다리며 그동안의 짤막한 보고들을 서로 주고받았다.
어떻게 지냈느냐? 얼굴이 좋아 보인다느니
덕담도 주고받으며 오랜만의 만남을 서로 기뻐했다.
부산 있는 친구랑 시할머니 제사 때문에 빠진 친구
나머진 다 참석했다.
모임 장소가 찾기 쉬운 곳이 아닌
골목 안 깊숙이 들어가 있어서....
친구들 마다 힘들게 찾아왔다며 속상해 했지만,
나 역시 찾지 못해 힘들었다. 그러나,
이내 풀어져서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었다.
은근한 자식자랑과 핏대를 올리며, 옆지기 흉을 서로
앞다투어보기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난 할 말이 없다.
속에 쌓인 근심 걱정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털어내 놓고 돌아서 곧장 후회할 일인 줄 알기에 그냥 꾹꾹 눌려두었다.
밉다며 흉을 봐도 그게 밉다는 소리로 들리지가 않는다.
그 속에 든 미움보다 사랑이 더 돋보이는 건
"이건 우리 신랑 잘 먹는 건데 사가야지"
"경치가 너무 좋다. 나중에 함께 와봐야지"
흉보든 입에서 곧장 이어져 나오는 옆지기 위하는 생각
그런 것 같다. 젊은 시절 애틋한 사랑보다
질기고 질긴 칡덩굴처럼 변한 이런 질긴 사랑이 온전한 사랑이 아닐까?
사랑한다고, 어찌 좋은 점만 볼까?
미워한다고, 어찌 나쁜 점만 보일까?
중년의 사랑은 그런 것 같다.
밉다 밉다 하면서 그놈의 정 때문에, 살아온 세월이 아까워서,
말들은 많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풍파에 시달려 찢기고
너덜너덜 기워진 사랑이라도 난 이 사랑이 좋다.
이런 사랑이 참 사랑일 것 같다.
2003년 11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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