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地藏寺(북지장사)

2015. 9. 30. 06:15문화산책/사찰 탐방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620

보물 제805호

 

[지장사 오르는 숲길]

북지장사로 오르는 길은 대구의 올레길 중에서도 울창한
숲이 우거져 왕복 2시간 정도의 걷기에 딱 좋은 곳이기도 하다.

북지장사를 답사하기 위해 나선 길 마음도 바쁘고 시간도 촉박하여,
입구쪽에 주차해 놓고 걸어서 오르지 못하고, 차로 이동하였다.

 

[북지장사 입구]

지금은 규모가 작아졌지만, 한때 사찰밭이 200결이나 될만큼
규모가 컸으며 지금의 桐華寺(동화사)를 말사로 거느렸다 합니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桐華寺(동화사)의 말사이다.

 

[등산로 인봉 올레길 입구]

 

[해우소]

명종 22년(1192) 普照國師(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보조국사의 중창 이후 이 절의 역사는 전혀 전래되지 않고 있다. 

다만 대웅전의 기와 중에 강희 4년(1665)의 銘(명)이 있는 것과
1623년의 銘(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절이 인조 1년(1623)에 중창되고
1665년에 중수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南無我彌陀佛(나무아미타불)이 새겨진 입석]

 

[북지장사 입구쪽 전경]

또 정종 6년(1040) 崔齊顔(최제안)이 쓴 경주 天龍寺(천룡사)의 중창과
관련된 信書(신서)를 보면 북지장사의 納入田(납입전)이 200結(결)이라 기록하고 있어,
이 절이 매우 규모가 컸던 큰 절이었다는 것과 1040년 이전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八公山 北地藏寺(팔공산 북지장사) 현판]

 

[북지장사 金剛門(금강문)]

일주문도 없고, 천왕문도 없는 '北地藏寺(북지장사)'

 

 

[북지장사 金剛門(금강문) 2]

아랫쪽에서 기다릴테니 다녀오라는 옆지기
서둘러 다녀오려 계단을 올라 사진으로 담고 있는 제 모습이
옆지기 디카에 잡혔네요.^^


 

[天王門(천왕문)에서 담은 지장전]

 

[좌측 金剛力士(금강역사)]

 

[우측 金剛力士(금강역사)]

양쪽 벽에 金剛力士(금강역사)가 북지장사를 든든하게 지켜주는듯 하다.

이 문을 통과함으로써 사찰 안에 들어오는 모든 악귀가 제거되어
가람의 내부는 청정도량이 된다는 것이다.

 

 

[地藏殿(지장전) 현판]

 

[안내판과 보물 제805호 地藏殿(지장전) 전경]

地藏殿(지장전) 편액이 현수막에 가려 보이지 않네요.
조금 윗쪽에 현수막을 걸었으면 좋았을텐데...

대웅전이 불에 타 소실되면서 대웅전으로 잠시 사용하기도 하였다.

 

 

[안내판 글 내용]

 

[지장전에서 내려다 본 설선당]

 

[북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 안내판 글 내용]

 

[說禪堂(설선당) 현판]

 

[說禪堂(설선당) 전경]

設禪堂(설선당)은 승려들과 일반 신도들의 수학 정진 장소이며,
寮舍(요사)는 승려들이 생활하는 곳이라합니다.

 

[보물 제 805호 地藏殿(지장전) 전경]

이 건물은 사역 동쪽에 있는 대웅전이 불에 타버려 근래까지
대웅전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나,  영조 37년(1761) 지장전으로 상량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지장전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앞면 1칸 옆면 2칸 규모이지만 앞면 1칸 사이에
사각형의 사이기둥을 세워 3칸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불전 건축기법으로는 보기 드문 형태를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건물이라 한다.

 

 

[地藏寺有功人永世不忘碑(지장사유공인영세불망비)]

地藏殿(지장전) 앞 有功人永世不忘碑(유공인영세불망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문에도 地藏寺(지장사)가 신라시대의 고찰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碑(비)는 영조 7년(1731)에 세워졌으며
雲巖堂(운암당) 玉峻大師(옥준대사)의 공적을 기록해 놓았다.

 

[山靈閣(산령각) 현판]

 

[山靈閣(산령각) 전경]

 

[大雄殿(대웅전) 현판]

 

[大雄殿(대웅전) 전경]

大雄殿(대웅전) 앞쪽에 커다란 포장을 쳐 놓아
정면의 모습을 담지 못하고, 옆모습만 담아 왔습니다.

地藏殿(지장전)이 옛 이름을 되찾게 되자 극락전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대웅전으로 이용을 하다보니, 사찰의 전체적인 배치도가 다른 곳의
사찰에 비해 다소 상이한 면이 있다 한다.

 

[대웅전쪽에서 담은 지장전 전경]

地藏殿(지장전) 柱聯(주련)

莫言地藏得閑遊(막언지장득한유)
지장보살님이 한가히 노닌다 말하지 말라
南方敎化幾時休(남방교화기시휴)
남방의 교화는 언제나 쉴 수 있으런가

造惡人多修善少(조악인다수선소)
악인은 많아지고 선업 닦는 이 적으니
地獄門前淚不收(지옥문전루불수)
지옥 문전에서 눈물 거두지 못하리.

柱聯(주련) : 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로
기둥(柱)마다 시구를 연달아 걸었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華林園(화림원) 현판]

 

[華林園(화림원)과 앞쪽 석탑]

대웅전의 동편에 남쪽을 향하여 나란히 서 있는 탑은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東(동). 西(서) 탑에 대해 좀더 알아보시려면 요기 클릭

 

 

[연못]

연못 주변에는 오래된 노거수 버드나무가 풍취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며,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벤치도 곳곳에 만들어 놓았네요.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며 쉬었다 가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布袋和尙(포대화상)]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布袋和尙(포대화상)
북자장사 답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보았지요. 

중국 스님으로 이름은 契此(계차). 
언제나 자루를 걸어메고, 소용되는 물건은 모두 그 속에 넣어 가지고
거리로 다니면서 무엇이든 보기만하면 달라고 하여, 먹을 것은 무엇이나 주기만 하면
받아 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그 자루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별호를 지어
長汀子(장정자) 또는 布袋和尙(포대화상)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 보살의 화현이라 하여,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