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장사 靑蓮庵(청련암)

2015. 9. 14. 06:13문화산책/사찰 탐방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남지장사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4호

 

[靑蓮庵(청련암) 가는 길]

 

청련암은 남지장사의 부속암자로 신라 신문왕 4년(684)
良介祖師(양개조사)가 왕명으로 남지장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창건
임진왜란 때 惟政(유정) 휘하의 승병들이 훈련장으로 사용하였으나 병화로 소실되었다.

 

 

[극락]

 

남지장사와 청령암을 이어주는 사진으로 보면 다리같지도 않은
작은 다리 옆 팻말이 붙어 있기에 보았더니, 극락이라 새겨져 있다.

 

極樂(극락)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

 

 

[청련암 가는 길 2]

 

그 뒤 효종 4년(1653)부터 숙종 40(1714)까지
印惠(인혜). 勝敏(승민). 池月(지월) 등이 중건. 중창하였으며,
순조 6년(1806)에 화재를 입어 2년 뒤 재건되었다.

 

 

[수목장 전경]

 

청련암으로 가는 길 양 옆으로 수목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요즘은 묘를 조성하지 않고, 수목장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다 들었다.
큰 나무 아래에 안치하는 줄 알았는데, 이곳은 작은 나무 아래에 모셔놓은듯 하다.

 

 

[길에서 우측 아래쪽 수목장]

 

마침 누군가 수목장에 모실 분이 계신지 가족이 함께 와서 둘러보시고 계셨어요.

 

 

[수목장 오르는 길]

 

남지정사를 거치지 않고, 곧장 수목장으로 오르는 길도 넓게 닦아 놓았네요.

 

 

[안내판과 청련암 전경]

 

현재의 건물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808년에 재건하였으며,
靑蓮庵(청련암)은 절내에서는 속칭 因法堂(인법당)으로 부르고 있다.

 

 

[안내도]

 

[안내판 글 내용]

 

[옆에서 담은 청련암 삼문 전경]

 

[靑蓮庵(청련암) 현판]

 

[靑蓮庵(청련암) 삼문 전경]

 

[청연암 표지석]

 

[靑蓮庵(청련암) 법당]

 

건물의 가운데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법당을 설치하고
앞뒤로 툇마루를 두었는데, 이는 스님들의 생활 공간인 요사와 법당의
기능을 겸하는 인법당의 법식을 잘 따르고 있는 것이다.

 

 

[金鼓(금고)]

 

金鼓(금고) : 사찰에서 쓰는 佛具(불구)의 하나.
쇠붙이로 얇은 북처럼 만든 것으로 사차레서 대중을 불러모으거나
급한 일을 알리는데 사용하였다 한다.

 

 

[靑蓮庵(청련암) 법당 2]

 

정면 3칸, 측면 2칸 즉 6칸 규모로 법당과 요사를 겸하고 있는
평면 배치가 특이하며, 구조는 소박하면서 부분적으로 고식 수법이 남아 있어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법당과 요사. 후원의 기능을 겸하는 복합건물로,
평면이 아주 특이하며, 구조는 소박하면서도 부분적으로 옛 법식의 수법이 남아 있다.

 

 

[三聖閣(삼성각) 전경]

 

삼성각은 산악숭배나 마을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대체로 1평 정도의 집에 산신당이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산신은 보통 지역수호신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산뿐만 아니라 산 주변의 지역을 관장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三聖閣(삼성각)]

 

이곳도 법당 뒤로 三聖閣(삼성각)이 자리하고 있다.
독성각, 산신각, 칠성각이 있으며, 대개 삼성각에 삼신을 같이 모신다.

 

독성각은 불교에서 말하는 독각을 모신 곳이다.
독각은 석가모니처럼 스승 없이 홀로 깨우친 자를 말한다.

 

 

[三聖閣(삼성각) 우측 벽 탱화]

 

[三聖閣(삼성각) 좌측 벽 탱화]

 

[안쪽에서 담은 삼문]

 

[浮屠(부도) 전경]

 

청련암으로 오를 땐 스쳐지나간 부도가
답사를 마치고 돌아올 때 눈에 띄여서 담아 왔습니다.

 

 

[浮屠(부도)]

 

누구의 浮屠(부도)인지는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아서 사진만 올립니다.

 

 

[청련암에서 남지정사로 이어진 길]

 

답사를 마치고 극락교를 지나 다시 속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