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7. 06:00ㆍ살아지는 이야기/삶과 일상
1월 29일 내려온 막내 가족
이르게 내려온다고 하긴 했지만, 오전 7시가 조금 지난 시간
"어머니 지금 여기 동산 병원 지나고 있어요."
"어머, 그럼 다 왔네"
바로 코앞에서 전화를 .... ㅎ
느긋하게 아직 도착할 시간이 멀었다 생각하고 우엉과 연근을 조리려 준비하고 있었는데...
애궁 서둘려야겠다.
아침은 해 두었나? 밥솥을 보니 취사가 보온으로 넘어갔네
이것저것 괜히 또 바빠진다.
바깥 현관문을 열었는데, 안 열린다면서 전화가 왔다.
비번을 알려주고 현관문을 열어놓고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반가운 얼굴들이 한눈 가득 보인다.
"어서 와 수고했다."
"어머니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할머니 안녕하세요."
들어서기 전부터 인사를 주고받으며
현관이 비좁도록 가득 채운 행복이 초아를 기쁘게 하였다.
"어머니 아무것도 준비하지 마셔요. 저희가 다 챙겨 내려갈게요."
하였지만, 그래도 약간의 준비를 하긴 했다.
무릎 수술한 올케 병원 태워주었다고 추어탕을 2통을 사서 나누어 주었고..
육개장 거리 쇠고기도 사주어서 끓이면 되고... 또 다슬기탕도 있으니 국은 됐고...
막내며느리가 준비해서 가져온 곰국도 있으니 국거리와 떡국 국물은 준비 완료.^^
바리바리 싸 온 짐들을 챙겨두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아침을 챙겼다.
"어머니 뼈 있는 갈비 준비해 왔어요. 그거 구워 먹어요."
어 나도 준비했는데, 홈쇼핑에서 파는 뼈 없는 갈비 사두었는데...
아무튼 이것저것 철저하게 준비해서 내려온 막내며느리 덕에
집에서 준비한 약간의 밑반찬 한 상 푸짐하다.
에구구 사진은 못 찍었네요.
보내놓고 정리하며 알게 된 음식 사진이 없네... ㅠ.ㅠ
늘 이래요. 밖에서도 집에서도 잘 못 찍는 음식 사진 통과 ㅋㅋ
막내가 혼자서 산책을 하고 오겠다며 나가고
며느리와 손주와 초아는 집에서 놀았죠.
소곤소곤 얘기하지 않아도 그냥 보고만 있어도 흐뭇하고 좋다.
이게 가족이란 거죠.
잠시 걷고 오겠다던 막내의 전화
"어머니 걷다 보니 유수지까지 왔어요."
에궁 너무 멀리까지 갔네
내가 대리려갈까? 하려다 말았다.
극구 안된다고 할 것을 알기에
손주들만 신났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신났어요.
집에서는 안 나오게 해두었기에 보지 못하니 할머니 집에서는
아예 리모컨을 손에 쥐고 놓지 않네요. ㅎㅎ
저녁을 먹고 얘기를 나누다가 난 먼저 자러 갔지요. ㅎㅎ
초저녁잠이 많은 난 함께 더 있고 싶어도 잠이 용서를 해주지 않네요.
30일 일요일
난 10시 예배 참석차 교회로 막내 가족은
집에서 인터넷으로 11시 영상예배를 본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점심을 먹은 후 막내는 가족과 함께 처가로
저녁은 처가에서 먹고 온다기에 난 혼자서 해결
9시경 도착한 막내 가족
31일 월요일
아침을 먹고 간단한 먹거리를 준비해서 섣달그믐날
추모관부터 들려 잠시 머물며 각자 마음속 인사를 나누고,
막내의 기도로 작별을 하였다.
그리곤 곧장 해인사로 출발
함께 할 수 있다는게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 일인지 미쳐 몰랐다.
벌써 3년째로 접어든 아이들과의 긴 이별이 혼자서 씩씩한척 하였지만,
그게 아니었나보다.
누릴 수 있을 때 실컨 누리자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야금야금 꺼내어 지난날의 추억으로 행복을 누려야지
해인사에 들려 판만대장경각에도 올라 관람을 하고
주변도 살펴보며 아이들은 연신 신기해하며 자기들만의 지식을 조잘조잘 알려준다.
해인사는 담아온 사진으로만 해인사 홈의 소개글을 간단하게 덧붙여 소개하겠습니다.
눈으로 들려보셔요.
구광루는 해인사의 모든 건물 가운데에서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구광루라는 이름은 화엄경의 내용에서 따온 것인데, 화엄경에는 부처님께서
아홉 곳에서 설법하시면서 그 때마다 설법하시기 전에 백호에서 광명을 놓으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는 노전스님을 비롯한 큰스님들만이 법당에 출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누각은 법당에 들어갈 수 없는 일반 대중들이 모여 예불하고 설법을 듣는 곳으로서 지은 것이다.
일주문과 봉황문을 지나면 해인사의 제 3문인 해탈문이 있다.
중문에 속하는 문으로써 일반 사찰의 불이문에 해당한다.
종각에는 사물이라고 불리는 법기(法器)가 설치되어 있다.
사물은 범종 · 법고 · 목어 · 운판을 말하는데 이 범종각은 사찰의 경내에서
마당을 내려다 보았을 때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어 왼쪽을 체로 오른쪽을 용으로
말하는 화엄의 사상에 따라 설치 된 것이다.
예불 또는 의식을 행할 때 두드리는 법기이며 물속에 있는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하여 소리를 낸다.
물고기는 눈을 뜨고 자기 때문에 항상 마음의 눈을 뜨고 열심히 수행하라는 뜻이다.
이것을 작게 한 것이 목탁이다.
여러 큰 불사에 집회장과 법당으로 쓰이도록 설계되었는데,
해인사의 다른 건물들에 견주어 지나치게 크게 지어진 감이 없지 않으나,
지하층도 크게 내어 여러모로 쓸모있게 지어진 집이므로 불사 때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한사원의 큰 법당에는 부처상이나 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큰 법당의 이름은 그 안에 모신 주불에 따라 결정된다.
그 주불이 바로 그 사원의 정신적인 지주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해인사는 화엄경을 중심 사상으로 하여 창건되었으므로, 거의 모든 절이 흔히
모시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대신에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그래서 법당의 이름도 대웅전이 아니라 대적광전이다.
해인사 대적광전(大寂光殿) 아래 넓은 뜰에 자리잡고 있어 정중탑(庭中塔)이라 한다.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54호로 지정되었다.
창건년도는 확실히 알 수 없고 1940년에 중창되었으며 이후에도 몇 차례의 중수를 거듭하게 된다.
현재의 건물은 1988년에 완전 복원된 건물로서 해인사 승가대학(강원)의 교사(校舍)로 사용되고 있다.
'깊고 오묘한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의 궁현당은 달리 '부처를 가려 뽑는 곳'이라는 뜻의
선불장(選佛場)이라 불리기도 한다.
구광루 오른쪽에 관음전(觀音殿)이 있다.
현재 강원(승가대학)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약 100여명의 스님들이 경전을 연마하고 있다.
건물의 현판은 궁현당과 같이 두 개인데 그 하나는 심검당(尋劍堂)이다 .
심검이라는 말은 모든 번뇌를 베어 버릴 수 있는 지혜의 칼을 찾는다는 뜻으로
수행의 목적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말이다.
이 건물도 해인사 강원(승가대학)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한전이라고도 불리는 응진전은 1488년에 처음 세워졌는데,
지금의 건물은 1817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명부전은 지장전이라고도 한다.
지옥 중생을 모두 제도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지장보살이 목조로 조성되어 주불로 모셔져 있고 그 좌우에 각각 도명보살과
저승에서 죽은 이들을 재판한다고 하는, 일명 시왕이라고 하는 십대왕이 있다.
명부전은 저승에 간 이들의 넋을 제도하는 곳으로,
사십구재를 비롯한 갖가지 제의들이 이곳에서 행해진다.
지금 건물은 1873년 곧 고종 십년에 지어졌다.
아차 나의 실수
어수정 안내판은 담아왔지만, 정작 어수정은 놓쳤다... ㅠ.ㅠ
대장경 안내팻말 옆으로 어수정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담아오진 못하였네요.
대적광전 위에는 장경판전이 자리하고 있다.
장경판전은 대장경을 모신 건물로, 이 형국은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부처님께서
법보인 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을 나타내므로 더욱 뜻깊다.
국보 52호로 지정된 이 장경각을 처음 세운 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장경이 해인사로 옮겨진 때가 1397년임을 미루어 볼 때 지금의 건물은 조선초 무렵인
1488년 쯤에 세워졌으리라고 여겨지는데, 여러 차례에 걸친 부분적인 중수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다.
장경판전은 모두 네 동으로 되어 있다.
북쪽의 건물을 법보전이라하고 남쪽의 건물을 수다라전이라고 하는데,
이 두 건물을 잇는 작은 두동의 건물에는 사간판대장경이 모셔져 있다.
이 장경각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조 초기의 건축물 가운데에서
건축 양식이 가장 빼어나서 건축사적인 면에서도 퍽 중요하게 여겨진다.
2007년 11월 24일 정면 3칸, 측면 3칸 그리고 다포형식을 가진 대비로전을 낙성하고
대적광전과 법보전의 ‘동형쌍불(同形雙佛)’인 두 비로자나 부처님을 나란히 안치하였다.
쌍둥이 비로자나불은 2005년 7월 개금하는 과정에서 불상 내부에
문서가 발견돼 883년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국내 최고(最古)의 불상임을 확인하였다.
사실 오늘은 목적지는 해인사 소리길이었다.
며느리 형부가 해인사 소리길이 좋다면서 다녀오라 했다 합니다.
이곳까지 오면 당연히 해인사도 들려야겠기에 우선 해인사부터 들린 후
소리길 중간쯤 3구간 길상암 주차장에 주차해놓고 함께 걷기로 미리 약속
주차장에 주차한 차에서 내려 주변 경관을 담기에 바빴다.
또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안내판이 보이기에 가까이 가서 담았다.
석불과 석탑이 있는 쪽 계곡 우측 길을 택하여 가야하나?
아님 명진교 건너 좌측길을 택하여 걸어야하나?
1972년에 영암대종사께서 창건한 이 암자에는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
백화담이 보이는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암자이다.
오르고 싶다는 생각은 굴뚝같지만, 가팔라 보이는 테그 계단이 기를 꺾는다.
그래도 아쉬워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되네요.
어디로 갈까 잠시 망서리다가 막내의 안내따라 명진교 건너 우측길로 접어 들었다.
짧은 나무 테그 길이 끝나고 오르면 오를수록 산길은 험해진다.
바위가 울퉁불퉁 아무래도 길을 잘못 택한 것 같다.
장애인도 탐방 가능한 구간이라 하였는데....
아닌듯하여 되돌아섰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길을 바로 코 앞에 두고 몰랐다는 것을...
그리곤 다시 차로 이동 작당한 곳에 주차한 후
해인사는 조금 전 다녀왔으니 해인사 가는 길은 접고,
안내 팻말이 알려주는 대로 아랫 쪽 대장경 테마파크 쪽 테그로 향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웃으며 달려가는 손주들
잠시도 한눈을 못 팔게 한다.
행여 넘어져 다칠까 맘이 조마조마
테그 길로 접어드니 좀 안심이 된다.
물소리 바람 소리 들으며 걷고 싶었지만,
계곡의 물이 얼어붙어 물소리도 바람도 잔잔하여 듣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여유롭고 좋다.
꽁꽁언 얼음을 뚫고 봄소식을 전해오겠지
날이 풀리고 졸졸 개울물소리가 들려오기시작하면
산천은 봄기지개를 켜고 울긋불긋 꽃망울을 터트리겠네
그때 쯤 다시 들려보고 싶다.
테그길 곳곳에 안내판이 붙어 있어서 읽으며 걷는 재미도 솔솔하다.
걷다가 쉼터도 만나고
막내가 막내에게 잡혀서 혼나고 있네요.
무슨 이유인가 하였더니 ㅎㅎ
손주가 아빠에게 사탕의 비닐 껍질을 벗겨 달라 했는데,
아들을 놀리려 홀랑 까먹었나 봐요. ㅋ
울고불고 꼬집고 한동안 시끄러웠지만, 잠시 후 뚝.
폭포물이 쏟아져 내려도 좋겠지만,
이렇게 꽁꽁 얼어 고드름으로 매달려 있어도 보기 좋다.
어!~~ 눈에 익은 풍경이....
맞네! 아까 주차하였던 길상암 주변 경관이네
에구 잘못했네요. 그냥 이곳으로 올랐다가 내려갔으면 되었을 텐데...
그래서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나보다. ㅋ
총 구간 7.3km 소요시간 3시간정도
1구간(3.7km) 홍류동 여행(소리길입구~홍류문)
2구간(1.8km) 발자취를 찾아서(홍류문~명진교)
3구간(1.8km) 비경을 찾아서(영진교~연산교~치인교) * 장애인 탐방 가능 구간
4구간(1.2km) 천년의 길(영산교~해인사) * 장애인탐방 가능 구간
그러니까 우린 3구간 비경을 찾아서 소리길을 걷고 왔네요.
내려오며 아이들과 대장경 테마파크에도 들렸습니다.
문 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총총걸음을 하였지만,
꼼꼼히는 아니지만, 다 둘러보고 왔습니다.
이곳은 저도 처음
와!~~ 이런 곳도 있었나?
다시 들려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언제 다시 들려 찬찬히 둘러보고 소리길도 다시 걸어보고 싶다.
이웃님들은 섣달그믐날 어떻게 보내셨나요?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건강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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