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10. 06:22ㆍ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첫아이 초등학교(그 당시는 국민학교)에 입학 시켜놓고 얼마나 흐뭇했는지 몰라요.
준비물이다, 숙제다, 오히려 아이보다 제가 더 바빴지요.
둘째딸은 걸리고, 셋째아들은 업고, 억척을 떨었습니다.
공부는 누가 하는지 모를 정도로 글자를 가르치고, 받아쓰기 학습장 정리. 등등
극성(?)엄마는 아니었지만,(혹 모르죠 다른 사람 눈에는 극성으로 보였는지.)
그 가까이는 가 보았습니다.
그때의 일입니다.
아파트는 들어가는 입구가 똑같아서 자칫 잘못하면 틀리기 쉽지요.
그날따라 애들 아빠가 학교에서 회식이 있다며,
늦는다고 전화가 왔기에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큰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늦은 시간이 되자 아이들도 잠들었습니다.
막내만 잠을 설쳤는지 칭얼대기에 업고 밖에 나와
애들 아빠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고 아긴 잠들었기에 집으로 들어와
눕혀놓고 그물그물 감겨오는 눈꺼풀과 잠과 전쟁을 하고 있는데.
딩!~동 딩!~동 반가운 소리에
"왜 이렇게 늦었어요." 하며 문을 열었다.
어머, 이 사람은 누구야???
술 냄새를 지독하게 풍기며 어떤 낮 모르는 아저씨가 들어오는거에요.
"아저씨 누구세요? 집을 잘못 찾으셨나 봐요. 나가세요."
아무리 말렸지만, 막무가내로 구두도 벗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이불 위에 큰대자로 누워 쿨쿨. 혼자서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서 얼른 관리실로 뛰어갔습니다.
"아저씨 우리 집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어요."
숨넘어가는 소리로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며 함께 집으로 왔습니다.
아직도 그 아저씨는 안방 이부자리 위에 누워 드렁드렁
코를 골면서 세상 모르게 잠들었어요.
애고 기막혀!!!
관리 아저씨 하시는 말씀에 더 기가 막혔어요.
"아! 이 아저씨구나, 또 술마셨나 보군요. 아줌마 전화 어딨어요?"
"여기요."
따르릉 전화를 돌리며, 댁의 아저씨가 몇 동 몇 호에 와 있으니 모셔가라고 하시더군요.
이 아저씨 술만 취하면 비슷한 아파트 출입구를 기억 못 해서 이런 실수를 자주 한대요....ㅠ.ㅠ
조금 있으니 아주머니와 그 아들이 와서 모시고 갔습니다.
미안하다고 미안해서 어찌할 줄 모르시면서...,
한바탕 난리를 쳤더니 잠은 다 달아나버렸지요.
걸레로 대충 딲아내고 조금 있으니, 다시 딩!~동 딩!~동
"누구세요??"
"내다!"
"내가 누구세요??"
"누군 누구야 내지 탕탕 문 열어!!"
이번엔 진짜 애들 아빠였어요.
취한 것은 그 아저씨나 우리 집 아저씨나 똑 같았죠.
술 냄새를 푹푹 풍기면서 그래도 용케 집을 찾아왔네요.
조금 전 이야길 했더니, 왈!! 가짜는 함부로 열어주고
진짜는 안 열어줬다면서 진짜 가짜도 구별 못했다고 오히려 야단맞았어요.
아이고 열받아!!!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속상하고 잠도 못 자고 씩씩거리다 보니,
벌써 코를 골면서 짝꿍은 잠들어 버렸네요.
자는 사람 깨울 수도 없고 술 취한 사람 깨워서 괜히 더 속만 상할 것 같아 그냥 참았어요.
다시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다음날 아침 아주머니가 찾아와서 죄송하다며 정중히 사과를 하드군요.
아주머니가 먼 잘못이 있어요. 남편 잘못 만난 죄지요.
부끄러워서 이사를 가야 할것 같다며, 뒤돌아서는 아주머니가 안 돼 보였어요.
아저씨!!! 다음부터는 조심하셔요!!
그다음 부터는 아무리 애들 아빠라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답니다.
누구세요?? 주민등록번호와 가족사항을 말씀해 보세용 하구요.
(이건 속으로 하는 말...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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