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원 떡 사 먹은 날

2015. 9. 10. 06:16살아지는 이야기/초아의 옛글 방

 

 

 

 

도동 측백나무숲을 보려 갔다가 안으로 이어진 길 따라 달려서 들린 끝나는

지점의 동네 평광 과수원들이 즐비하고, 사과나무 아래엔 사과가 수북하다.
한 자루 맘대로 담아서 1만원 주고 사온 사과가 꿀이 들어 있는 게 아주 맛있었기에 내년에도

사려오자 약속을 했지만, 다음해엔 너무 늦게 오느라 사과철이 지나 사질 못했다.


올핸 꼭 사야지 하고 들렸더니 너무 일찍 들렸나보다
마디마디 달린 사과들이 햇볕에 여물어 가고 있었다.
오늘쯤은 땄으리라 생각하고 평광으로 향했다.

올핸 사과값이 비싸서 그런지 낙과 인대도(마른기스) 한 상자 이만오원 이란다.  

가져간 자루에 담고 집으로 무거우니 두어 번 조금씩 나른다고 해도 자기가

가져가겠다며 무거운 자루를 들고 내겐 작은 비닐 봉지에 들은 사과를 들고 가란다.

4층까지 단숨에 올라간 난 얼른 집안에 사과봉지를 두고 다시 되 내려갔다.
그 사이 3층까지 올라온 짝꿍 자루에 손을 대는 순간


"비싼 사과 사먹는 거야. 뭔 식구가 있다고..."
불퉁하니 짜증이 묻어난 소리를 한다.
이크. 우겨서라도 그냥 두고 올라가자고 할 걸
화가 나면 다른 곳으로도 불똥이 튀는 짝꿍
아니나 다를까. 작은 방에 둔 이불로 번졌다.

일년이 넘어도 세탁하지 않은 이불을 덮으라 한다며, 더러워서 못 덮겠다나.....흐미,
새로 사서 반년도 안된 새 이불이 어떻게 일 년이 넘었으랴만,
손주들이 다녀가며 먹고 쏟고 토하고 한 흔적들이 빨아도 빨아도 그냥 흐릿하게 남아있다.

그 위에 패드를 깔고 덮긴 해도 깔끔한 남편 성격에 거슬렸나 보다.


"그거 빨아도 안 져요."
"그럼 버리고 다시 사든지...껍질을 다시 갈든지.."
"요를 어떻게 그렇게 해요."
"그럼 내 말 한번 들어봐, 만약 내가 와이셔츠를 입고
커피를 마시다 쏟았다 하자 빨아도 안 진다고 그냥 입으라고 할래??"
"그건 아니죠. 이불하고 그거하고 어떻게 꼭같아요."
하려다 얼른 속으로 삼켰다.

아무래도 짝꿍의 표정이 심상찮다. 조심해야지 말대꾸한다고 또 한마디 듣고,

속이 상해 부엌으로...다시 작은 방, 화장실, 계속대는 짝꿍의 까탈에...
화난김에 서방질한다는 말처럼....요 껍질을 벗겼다.


그리곤 돌돌 말아 들고 "다녀올게요." 하곤 나셨지만, 대신동 시장가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고
어쩔까 하다가 동네 양장점(수선집도 겸함)에 들려 요 껍질을 다시 만들려면 얼마나 들지 물었다.
1인용 사만오천원 2인용 오만오천원 에공 넘 비싸다.
그렇게 좋은 천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너무 두껍지 않게 그러나 너무 얇아도 안되니까

적당한 천으로 해달라고 했더니, 2개 다 해서 오만원에 해 준다기에 해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상한 속을 달랠 길 없고, 곧장 집으로 오기도 싫어 이웃집에들려 한참을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주고 받다가 왔다.

아직도 누워 돌아보지도 않지만, 조금 풀린 것도 같다.
오만원 떡 사먹었넹 아이고 내 팔자야!!!

 

 

 

'살아지는 이야기 > 초아의 옛글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립고 보고픈 사람  (2) 2015.09.11
술이 유죄  (0) 2015.09.10
오는 말 가는 말  (2) 2015.09.09
서로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2) 2015.09.09
어머니 저 잘 할게요.  (2) 2015.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