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洛書堂(이락서당)

2020. 10. 8. 06:23문화산책/향교와 서원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서구 파호동

 

[강창교에서 담은 금호강과 이락서당 전경]

 

강창교 건너 대나무숲 산책로에 들렸다가 돌아오는 길에 만난
유유히 흐르는 금호강 옆 궁산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伊洛書堂(이락서당)

 

[강창교에서 담은 이락서당 전경]

 

이곳을 지니치며 늘 궁금했던 곳이었기에....
우선 전체의 전경을 담기 좋은 강창교위에서 담아보았다.

 

[강창교에서 줌으로 당겨 담은 이락서당]

 

조선 중기의 학자인 寒岡(한강) 鄭逑(정구, 1543~1620)와
樂齋(낙재) 徐思遠(서사원, 1550~ 1615)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정조 22년(1798)에 건립한 講學所(강학소)라 합니다.

 

[이락서당 옆쪽 궁산 등산로]

 

우선 이곳은 통과하고 이락서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등산로 쪽에서 담은 이락서당 전경]

 

정조가 등극하면서 탕평책을 쓰고 학문을 숭상하는 기풍이 일어나자
당시 대구와 달성, 칠곡 등지의 명문가 유생 30명이 뜻을 모아 세운 후
인재 양성과 禮學(예학) 숭상을 위한 私塾(사숙)으로 사용되어 왔다 합니다.

 

[안내석과 이락서원 삼문 전경]

 

이락서당 건립에 참여한 문중은 모두 아홉 문중으로,
성주도씨. 光州(광주)이씨. 함안조씨. 밀양박씨. 전의이씨. 일직손씨.
순천박씨. 달성서씨. 廣州(광주)이씨이며, 이들을 통칭하여 9문 11향 30군자라 합니다.

 

[안내석]

[안내석 내용]

[이락서당 출입문 전경]

 

한강 정구는 창녕현감, 지평, 승지, 관찰사를 거쳐
대사헌에 이르렀고, 증이조판서와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경학, 산수, 의약, 풍수에 정통하였으며,
특히 예학에 밝았으며 대문장가로도 이름이 높았다 합니다.

 

[이락서당 출입문]

 

낙재 서사원은 정구의 제자로, 주자학 및 이황의 문집을
깊이 연구하고,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임진왜란 때 대구 지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팔공산전투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라 합니다.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진 못하였습니다.

 

[이락서당 옆쪽 궁산 등산로 입구]

 

등산로 입구 계단위쪽으로 보이는 팻말 궁금해서 올라가 보았다.
행여 그 쪽으로 가까이 다가 갈 수 있을까 하고...

 

[등산 안전수칙 내용]

[이락서당 안내판]

 

등산안전수칙과 이락서당 안내팻말은
세워져 있었으나 이락서당은 가까이 할 수는 없었다.

 

[등산로쪽에서 담은 이락서당 전경]

 

그래도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이렇게 위쪽에서 아래 이락서당의 전경을 담을수 있었지요.

 

[등산로쪽에서 담은 이락서당 전경 2]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쳐지는 일명 江倉(강창)이라는 곳에
방 2칸, 대청 2칸의 구조로 누각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등산로쪽에서 담은 이락서당 전경 3]

 

건물 전면에는 伊洛書堂(이락서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京彌齊(경미재)와 慕寒堂(모한당)이라 쓰인 현판도 있었으나 2006년 도난당했다고 한다.

 

[등산로쪽에서 담은 이락서당]

 

이락이라는 이름은 강창 지역을 가리키는 말인 동시에
주자의 '伊洛淵源錄(이락연원록)'에서 유래한 이름이라 하네요.
유학의 중흥지 또는 성리학 그 자체를 의미한다.


현재 이락서당보존회가 구성되어 보존, 관리하고 있다 합니다.

 

[가파른 등산로 입구 계단]

[아래쪽에서 담은 이락서당 전경]

 

성서에 있는 계명대학교 앞을 지나 새로 옮긴 동산병원도
지나 多斯(다사) 지역으로 가다보면 江倉橋(강창교)가 나온다.


이 강창다리를 지나기 직전 오른편 산기슭에 최근
새로 지은 서당이 하나 서있는데 바로 伊洛書堂(이락서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