晉州(진주) 龍江書堂(용강서당)

2019. 12. 5. 05:50문화산책/향교와 서원

 

소재지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압사리 1266-2

경남문화재자료 제64호

 

[용강서당 관리동 ?]

 

용강서당에 도착했을 때 서당 앞쪽에는 커다란 돌무더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서당을 수리하려는지 덤프트럭이 돌을 담아와서 부어 쌓아두는 듯 하였다.

트럭을 피해 한 컽으로 주차를 해 놓고 서당 옆 건물부터 담았다.

 

용강서당 관리소인듯 한데... 어떤 용도에 쓰이는 건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입구쪽에서 담은 용강서당 전경]

[용강서당 안내판 글 내용]

[용강서당 안내판 영문 글 내용]

[닫힌 출입문 대문]

 

관리하기가 힘들어서 닫아 두는 곳이 많지만, 이해는 하면서도...

닫힌 문 앞에서 늘 아쉬운 단절을 느끼곤한다.

 

가져간 셀카봉으로 담너머로 안쪽 건물을 담아왔습니다.

 

담너머로 두어장 담고 다시 담아보려 자리를

옮기려는 순간 뻥뻥! 요란한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놀란 가슴을 안고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보니,

돌을 옮겨놓던 덤프트럭의 바퀴 펑크소리였다.

 

우와 놀라라...

진정을 하고 담으려하는데,

또 다시 뻥뻥! 놀란 가슴은 콩알만해져서

서둘러 차에 올라 뒤돌아보지도 않고 내뺐습니다.ㅎㅎ

 

그래도 이나마 몇장의 사진이라도 건질수 있어서 소개를 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담너머로 담은 용강서당]

 

조선시대 明宗(명종)과 宣祖(선조) 兩代(양대)에 걸쳐
吏曹判書(이조판서), 大提學(대제학) 등을 지낸 東岡(동강) 金宇?(김우옹)을
기리기 위하여 1902년에 지방 유림들이 창건하였다.

諡號(시호) 文貞公(문정공)

 

김우옹은 南冥(남명) 曺植(조식)과 退溪(퇴계) 李滉(이황)에게

학문을 배워 문장과 도학으로 명망이 높았으며, 20권의 문집과

'續綱目(속강목)' 36권을 지었다.

 

'續綱目(속강목)'은 東洋史(동양사)에 대한 저술로 후세 사학도에게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담너머로 담은 용강서당 전경]

 

전체 배치는 크게 講學空間(강학공간, 학문을 가르치는 장소),

祠堂(사당, 제사 지내는 장소), 殿閣(전각, 판각 보관 장소)의

세 부분으로 구획되어 있다.

 

이 중 강학공간이 가장 앞에 놓이고,

그 뒤로 사당과 전각이 나란히 옆으로 배치되어 있다.

 

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5량 구조로 익공계 팔작지붕이며,

정원사의 편액이 있는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3량 구조로 익공계 팔작지붕이다.

 

[입구쪽에서 담은 용강서당 전경]

 

晉州龍江書堂所藏白湖集附錄冊板(진주 용강서당 소장 백호집 부록 책판)
경남 진주의 용강서당에 소장되어 있는 '白湖集(백호집)' 부록의 목판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62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서당에서 서원으로 격상을하였다고 하는데,
아직도 예전의 용강서당 안내판이 그대로 세워져 있으니... 헷갈리게 하네요.


주소찾기를 하였을 때도 용강서당이라 적으니 나오지 않고
용강서원이라 적으니 나오긴하였지만, 네이버에서는 용강서원
다음에서는 용강서원이라 적으니 나오지 않고, 용강서당이라 검색을 하니
주소가 나오는 이유 또한 모르겠습니다.


고쳐야 할것 같습니다.
서원이든 서당이든 어느쪽이든 하나로 통일시켰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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