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李仁星(이인성) 특별전

2020. 1. 16. 05:33갤 러 리/예술작품

 

소재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 374

 

[이인성 특별전 출입구 전경]

 

화가 李仁星(이인성, 1912~1950)은 1912년 대구에서 태어나

1950년 초겨울 서울에서 세상을 떴다. 불과 38년이라는 짧은 생애였다.

 

하지만 이땅에 그리 길지 않은 세월을 머문 화가라고

하기에는 이인성이 우리 화단에 남긴 족적은 너무나도 선명하다.

 

화가로서 등단은 마치 혜성이 다가오는 것 같이 순식간의 일어었고,

나타나기 무섭게 그는 단번에 화단의 정점에 올라 한 시대의 미술계를

현란하게 풍미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에는 늘 '귀재', '기린아', '천재화가', 선전 최대의 감격'

같은 화려한 수식어들이 따라다녔다. 그렇듯 그는 그림 그리기에서 귀신 같은

재능을 지닌 사람 즉 '귀재'였다.

 

[전시실 입구 좌측 이인성 작가의 약력]

[전시실 내부 우측 이인성 작가의 고향, 대구 화가의 화실 등 안내글과 사진등]

[입구쪽에서 담은 전시실 내부 전경]

[이인성 특별전 안내글]

[이인성 특별전 영문 안내글]

[화가의 화실]

 

이인성은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격려해주었던 대구 지역의

유지들과 선후배, 그리고 경북여자고등학교 교장이었던

시라가 주키치의 지원으로 스무살이 되던 해인 1932년

일본으로 유학 갈 수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의 정착을 도와주었던 오오사마 상회가 있었다.
오오사마 상회는 귀한 미술재료와 전문서적을 취급하던 곳으로
이인성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실을 내어주고, 그가 자신만의
개성있는 화풍을 심화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배려해주었다.


이인성은 유학시기에도 방학이 되면 꼭 대구를 찾았고, 일본의 화우들과
우리의 풍토를 그리거나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할 작품을 연구하는 등
대구와 일본을 오가며 조국과 서양화에 대한 남다른 의식을 형성하였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상황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향토애를
심화시킨 명작 '여름 실내에서', '가을 어느날', '경주의 산곡에서',

'카이유'가 탄생 되었다.

 

[대구 남산병원 내 3층 화실]

 

이인성은 1934년 동경유학시절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는 신여성 이었던
김옥순(노란 옷을 입은 여인 작품 속 모델)과 사제지간으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하였고, 1935년 귀국하여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당시 대구 남산병원의 원장이었던 장인 김재명은 병원 3층에
이인성을 위한 화실을 내어주었고 이곳에서 그는 예술을 토대로 새로운
시도를 도모하였다.


당시 이인성은 본인의 이름을 건 양화연구소를 개소하기도 하였고,
남정집의 일부를 개조하여 아르스(ARS) 다방을 운영하는 등 미술계를
넘어 문화계 전반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황금기를 누렸다.


더불어 '사랑하는 고향'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붙여준 첫째 딸 애향을
얻기도 하였으며, 사랑과 행복, 그리고 열정으로 가득한 시기를 보낸 공간이다.


이 화실에서는 '온일'(1930년대 중반), '침실의 소녀'(1930년대 후반),
'정원'(1930년대 후반), '사과나무'(1942)
등의 명작이 그려졌다.

 

[이인성 양화연구소]

 

남산병원의 화실은 1936년부터 '이인성 양화연구소'라는
이름을 걸고 국내에서 최초로 서양화를 교육하는 공간으로 운영되었다.


이 장소는 현재 반월당역 ABL빌딩 자리이며, 당시부터 현재까지
명덕역 부근 일대는 미술학원들이 자리한 지역으로 발전되어왔다.


이인성을 일찍이부터 학생들에게 직접 그림을 지도하며 후학 양성에 힘써왔다.
이러한 과정은 서양화를 알리고 우리나라에 근대미술이 도입되는 시기의 기틀을
마련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소화한 것이다.


양화연구소는 정물과 풍경을 다루는 석고부와 모델을 사용하는 인체부로
나눠져 있었고, 평일에는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오전부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오후부,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야간부, 일요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요부가 운영되었다.

 

[이인성의 화구 Painting Materals of Lee in-Sung]

[전시실 내부 좌측 전시 작품 전경]

 

전시 작품 소개는 우측부터 순서대로 소개하겠습니다.

 

[이인성 / 낚시 Fishing / 1932년경 / 수묵담채 / Ink and Color on Paper / 7.5x36cm / 개인소장]

[이인성 / 낚시 Fishing / 1932년경 / 수묵담채 / Ink and Color on Paper / 7.5x36cm / 개인소장]

[전시실 내부 전시 작품 전경]

[이인성 / 첨성대 / 1934 / 수묵담채 / Ink and Color on Paper / 24x36cm / 개인소장]

[이인성 / 경주 풍경 / 1938 / 종이에 수채 / 25.5x48.5cm / 대구미술관 소장]

[이인성 / 풍경 / 1942 / 종이에 수채 / 25x56.2cm / 개인 소장]

[이인성 / 계산동 성당 / 1930s / 종이에 수채 / 34.5x44cm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인성 / 팔공산 / 1930년대 중반 / 나무에 유채 / Oil on Wood / 24.3x33.5cm]

[이인성 / 온일 / 1930년대 중반 / 켄버스에 수채 / Watercolor on Canvas / 72x90cm / 개인 소장]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따뜻한 어느 날 이색적인 수목으로 가득 찬

정원을 수채화로 그린 풍경화이다. 수채화로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유화로 그린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화풍이 특징이다.

 

[이인성 / 사과나무 / 1942 / 켄버스에 유채 / Oil on Canvas / 91x116.5cm / 대구미술관(대구명덕초등학교 기탁작품)]

[이인성 / 여름 실내에서 / 1934 / 켄버스에 수채 / Watercolor on Canvas / 71x89.5cm / 개인 소장]

[전시실 내부 전시 작품 전경]

[아르스(ARS) 다방]

 

이인성은 미술 외에도 문학,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예술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대구 남전집 일부를 개조하여 문화인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아르스 다방을 1937년에 개업하였다.

 

위 사진은 당시 아르스 다방에서 이인성과 지인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대구시티발레단은 이인성의 아르스 다방에서 영감을 받아 2017년과
2019년 '카페 아르스'라는 공연을 했다.


공연에서는 이인성의 작품 10여점(한정, 경주의 산곡에서, 가을 어느 날,
노란 옷을 입은 여인, 사과나무, 해당화, 소녀, 주전자가 있는 정물,
석고상이 있는 정물, 자화상 등)
을 소개한다.

 

[카페 아르스 공연 영상 중 일부 동영상으로 담아 옴]

[전시실 내부 전시 작품 전경]

[이인성 / 장미 / 1940 / 나무에 유채 / Oil on Wood / 45.3x37.3cm / 개인소장]

[이인성 / 붉은 장미 / 1940년대 초반 / 캔버스에 유채 / Oil on Wood / 45.5x38cm / 대구미술관 소장]

[이인성 / 정물 / 1944 / 캔버스에 유채 / Oil on Wood / 45x53cm / 개인소장]

[이인성 / 카이유 / 1932 / 종이에 수채 / Watercolor on Paper / 72.5x53.5cm /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카이유'는 이인성이 일본으로 유학간지 1년만에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상을 받은 후 일본 궁내성에서 매입했다가

1999년 우리나라로 돌아와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명제 '카이유'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그 의견은 크게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우리말 '쾌유(快癒)'를 일본어로 읽으면 '카이유'가 되는데 이 때문에 누군가의

쾌유를 기원하거나 축하하기 위해 그렸더는 설이 있다.

 

다른 하나는 칼라 꽃이 일본어로 '카이우'라고 불리니 중의적으로 사용했다는 가정도 있다.

마지막 의견은 프랑스어 '[caillou[kaju]', 즉 보석을 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 가지 의견은 아직 모두 확실하지 않아서 그 숨은 뜻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는다.

 

[이인성 / 정물 / 1930년대 중반 / 수묵 담채 / 23x43cm / 개인소장]

[이인성 / 정물 / 1938 / 나무에 유채 / Oil on Wood / 24x33.3cm / 개인소장]

[이인성 / 노란 옷을 입은 여인 / 1934 / 종이에 수채 / Watercolor on Paper / 75x60cm / 개인소장]

 

그림의 주인공은 이인성의 아내 김옥순(1916~1942)이다.

김옥순은 일본 동경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던 신여성이었다.

 

1935년 이인성과 김옥순은 그림을 가르쳐주고 배우는 사제지간으로

만났고, 사랑하는 연인 사이로 발전해 1935년 6월 7일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 부부가 되었다.

 

[전시실 내부 전시 작품 전경]

[이인성 / 침실의 소녀 / 1930년대 / 캔버스에 유채 / Oil on Canvas / 80x44cm / 대구미술관 소장]

[이인성 / 붉은 배경의 자화상 / 1940년대 / 나무에 유채 / Oil on Wood / 18x10.5cm / 개인소장]

[이인성 / 붉은 배경의 자화상 / 1940년대 / 나무에 유채 / Oil on Wood / 18x10.5cm / 개인소장]

 

위 자화상 작품크기가 너무 적어서
관람하시기 힘드실것 같아 조금 크게해서 올렸습니다.

 

[이인성 / 빨간 옷을 입은 소녀 / 1940년대 / 캔버에 유채 / Oil on Canvas / 44.7x26.5cm / 개인소장]

[이인성 / 어린이 / 1940년대 중반 / 종이에 수채 / Watercolor on Paper / 41x23cm / 개인소장]

[전시실 내부에서 담은 출입구쪽 전시 작품 전경]

 

1930년 조선에서 '조선의 지보', '양화계의 거벽'으로 불리는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1950년 비운의 총기 오발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후 그는 역사의 뒤안길로

잠시 대중으로부터 잊혀져 가는 작가가 되고 말았으나, 다행이 2012년 국립 현대미술관

주최 덕수궁미술관에서 3개월간 전시되어 다시 살아 우리 곁으로 돌아 온 화가가 되었다.

 

위 중간 중간 설명 글은 팜플랫에서 또는 전시실내부에서 등 여러곳에서 옮겨 적은 글입니다.

 

이인성 특별전 소개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