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殷輔(윤은보) 선생 신도비

2019. 8. 1. 05:34문화산책/여러 종류의 민속자료

 

소재지 :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산 33-1

의정부시향토유적 제2호

 

[海平尹氏掌令公領域(해평윤씨장령공영역) 碑(비)]

[대통령 윤보선 참배기념비]

[아래쪽 도로에서 담은 신도비각 전경]

 

尹殷輔(윤은보, 1468~1544)
조선전기 병조판서,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 海平(해평). 자 商卿(상경). 수원부사 尹處誠(윤처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承文院參校( 승문원참교) 尹沔(윤면). 아버지는 첨정 尹萱(윤훤).
어머니는 현감 金模(김모)의 딸이다.

 

[입구쪽에서 담은 신도비각 전경]

 

성종 25년(1494)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史官(사관)에
선발되고, 이듬해 承文院檢校(승문원검교)로 춘추관기사관을 겸직,
'成宗實錄(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연산군 3년(1497) 禮官(예관)으로 文昭殿(문소전)의
추석 제향을 지낼 때 제4실의 神位版(신위판)을 떨어뜨려
파손한 죄로 杖(장)을 맞고 유배되었다.

 

[신도비각 전경]

 

그러다가 이듬해 풀려나와 정언에 서용되었고, 이후 지평. 집의를 거쳐,
중종 1년(1506) 춘추관편수관으로 '燕山君日記(연산군일기)'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09년 대마도 敬差官(경차관)으로 임명되어, 당시 계해조약을 어기고
三浦(삼포)에서 작폐를 일삼던 일본 거류민들로 하여금 조약을 준수하도록
대마도주에게 國書(국서)를 전달하였다.

 

[묘역으로 오르는 돌계단 전경]

[윤은보 선생 신도비 안내판 글 내용]

[휘 정성공(윤은보)선생 신도비명]

[윤은보 신도비 螭首(이수)]

 

이수에는 두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좌측의 용은 아래에서 위로, 우측의 용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여의주를 노리고 있는 형상을 새겨 놓았다.

 

[신도비 앞 전경]

 

묘소 입구에 위치한 신도비는 명종 6년(1551)에
세워진 것으로 현재 비각 내에 위치해 있다.


비문은 洪彦弼(홍언필)이 짓고, 申孝仲(신효중)이 글씨를 썼으며,
朴公亮(박공량)이 새긴 것으로 전해진다.
비의 재료는 화강암이고 높이 약 2.5m, 너비 약 91cm, 두께 약 25.5cm이다.


윤은보의 신도비가 있는 곳은 예로부터 비석거리라는 지명으로 불린다.


1513년 경상도 암행어사로 나가,
삼포왜란 이후 경상도의 防戍(방수) 문제를 점검하였다.


이어 직제학. 부제학. 대사간을 거쳐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
1519년에 이조참판으로서 반정공신의 녹훈 개정을 주청했고,
1521년에는 대사헌으로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윤은보 신도비 龜趺(귀부)]

 

龜趺(귀부, 거북모양의 비석 받침돌)의 머리가 서북향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신도비 옆 전경]

 

이듬해 공조판서로서 강원도 量田巡察使(양전순찰사)로 파견되었고,
이어 예조판서. 대사헌. 이조판서.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1529년 지중추부사로
奏請使(주청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대사헌. 병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거쳐 1533년 좌찬성에 오르고,
그 뒤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역임하고 耆老所(기로소)에 들어갔다.

 

[신도비 뒤 전경]

 

1543년 영의정에 재직시 왕명에 의해
'大典後續錄(대전후속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성종. 연산군. 중종 등 3대에 걸쳐 요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계속된
사화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연루된 적이 없었으므로 사림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당시의 史評(사평)에 의하면
"학술은 뛰어나지 않았으나 吏事(이사)에는 練達(연달)하고 상세하다."
고 하였다. 시호는 靖成(정성)이다.

 

[尹萱 神道碑(윤훤 신도비)와 좌우 망두석]

 

윤은보 신도비 뒤쪽에는 선생의 아버지
윤훤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기에 함께 담아와서 소개합니다.


윤은보의 신도비는 비각안에 보호되어 있으나 윤훤의 신도비는
비각이 없는대신 장명등이 좌, 우로 신도비를 호위하듯 세워져 있다.

 

[九세 첨성공(휘 훤) 신도비명]

 

윤훤(1444~1504년)은 薦擧(천거)로
翊衛司司禦(익위사사어)를 임명받고 벼슬길에 들어섰다.

 

이후 都摠府都事(도총부도사)와 司贍寺僉正(사섬시첨정) 등을
역임하였고, 軍器寺僉正(군기시첨정)으로 轉任(전임)되었다가
연산군 10년년(1504)에 생을 마쳤다.

 

[尹萱 神道碑(윤훤 신도비)전경]

 

윤은보 선생의 신도비는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었지만,
아버지 윤 훤의 신도비는 비각을 세우는대신 좌, 우측으로
망두석 두기가 비각을 대신하여 신도비를 지키는 세워져 있었다.

 

[정면에서 담은 尹萱 神道碑(윤훤 신도비)]

 

후에 의정부 議政府(의정부) 領議政(영의정)에 贈職(증직)되었는데,
비문에는 윤훤의 世系(세계)와 官歷(관력) 및 가족사항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우측 옆에서 담은 尹萱 神道碑(윤훤 신도비)]

 

중종 38년(1543)에 세워진 이 비는 龜趺(귀부) 위에
碑身(비신)을 얹고 螭首(이수)를 올린 일반적인 신도비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비문과 글씨는 禮曹判書(예조판서) 成世昌(성세창)이 짓고 썼다.

 

[뒤에서 담은 尹萱 神道碑(윤훤 신도비)]

[望拜壇(망배단)]

 

뒤쪽에는 望拜壇(망배단)도 자리하고 있네요.

 

[尹萱 神道碑(윤훤 신도비)와 윤은보 신도비각 전경]

 

윤은보선생의 신도비와 아버지 윤훤의 신도비 소개를 마칩니다.
신도비윗쪽에 있는 묘역은 다음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